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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보내온 편지를 곧바로 열지 않는 것은

그 여운을 되도록 오래 즐기기 위해서.

품에 꼭 안아보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때로는 향기까지 맡아본다. 향기를 맡다니.

어쩐지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지긴 하지만

편지에서 떠도는 향기가 말 그대로

누이 그 자체인 것만 같다. 편지니까 이렇게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

 

 

기다렸던 편지일수록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품고만 있다가 아껴가며 읽어갔던 편지.

삐뚤고 못난 글씨여도 그 사람만의

감성이 묻어나 더없이 좋았던 기억들.

편리한 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조금은 번거롭지만 가끔은 서로에게 편지 한 장씩

써주는 기쁨을 전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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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네요. 맞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봐도 딱 맞는 소리네요.

이글을 보니 아주 먼 옛날의 그 아련한 기억이 올라옵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이야깁니다.

저와 제 여자 친구의 사춘기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빛깔처럼 곱게 자라던 시기였었지요.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보고 싶고 죽음이 닥친다 해도 하등 망설임 없이 함께 지내고 싶은 그런 맘(풋사랑)이 하늘을 찌를 듯했었습니다.

그렇게 맘 속에서만 서로 활활 태우다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던 시기가 왔었지요.

저는 시골에서 광주로 올라와 명색이 유학했습니다.

그녀는 훨씬 멀리 수도권으로 가버렸지요.

언제부터 승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가 되었더군요.

-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 지금 8리 -

제 생명과도 같은 군번도 잊어버린 놈이 이 글 쓰려니까 그 까마득한 주소까지도 상당 부분 떠오릅니다.

이따금 그녀에게서 편지 오는 날이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순간 주인집 아주머니 낭랑한 목소리로 불러 세우곤 했었지요.

그리고는 누구냐고 물으면서 꽃 편지 전해 주곤 했었답니다.

편지를 얼른 낚아채고서 부리나케 제 자취방으로 달려 들어갔었지요.

아주머니가 아니 제 편지 남들이 계속 들고 있으면 달아질 거 같았거든요.

코에 대고 으흠 들이마신 뒤 한참이나 숨도 참았답니다.

그러고도 즉시 편지를 까지 않고 일기장이나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무작정 펴서 그 속에 꽂아 두곤 했었지요.

편지엔 틀림없이 가슴 터질 듯 애절한 냄새가 들었을 것이고 그 예쁜 화학적 에너지를 공중으로 날려버리고 싶진 않았답니다.

3년 걸러서 두세 번을 어머님께서 느닷없이 올라와서는 제 책상 서랍에서 그녀로부터 온 편지를 발견하곤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두눈에 불을 쓰고 그녀를 싫어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개똥철학이지만, 저는 저나름대로 헷세나 칸트 그리고 훨씬 감명을 많이 줬던 쇼펜하우어 등을 섭렵했다고 여겼거든요.

'까짓 수학 문제 한두 개 더 잘 풀면 뭐할 것이며, 배우기도 까다로운 영어 같은 건 쥐뿔났다고 하는 거야!'

그런 식이었거든요.

다 아는 5.18을 숭고하게 겪지 못한 탓인지 자꾸만 삐딱하게 나갔던 시절입니다.

아무튼, 당시의 아리따운 제 애인은 지니고 있는 모든 열정 다 바쳐서 저를 사랑하고도 억울하게도 비운의 여인이 돼야 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지 먼 훗날 제 몸이 이리 된 것에 빗대보면 당시에 사랑했던 여인이 제 배필이 안 됐던 거 너무나도 다행한 일입니다.

그녀가(그녀의 가정이) 언제까지고 활달하고 번창했으면 합니다.

여수에서 바다와 아주 밀접한 사업을 한다고 예전에 들은 것도 같은데 요번 여수엑스포가 그녀에게도 그 지역 모든 시민에게도 큰 보탬이 되었고 앞으로도 쭉 그러하기를 기원합니다.

 

==-= 친구야 사랑해 =-==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