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는 놈이 영면에 들게끔 놓아주려 합니다.
'고추도 사람 같이 늙는가 보구나!'
'???'
'인제 저놈 더는 못 따 먹겠다! 저것도 삼 년이나 살았는데 처음 다르고 작년 다르고 올핸 씨알이 너무나 작더라!'
'고추가 어떻게 삼 년이나 큰대요?'
'처음에는 이렇게나 크고 굵었었지! 그랬는데 작년엔 요만해지더니만 올해는 아예 고추가 작달막한 게 동글동글 하잖느냐?'
손으로 모양새까지 만들어가면서 어머님께서는 억척스럽게도 3년이나 키웠다는 걸 강조하셨습니다.
윗이야기는 한 열흘쯤 전에 베란다 화분의 고추를 보고선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 일부입니다.
어머님께서 홀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추를 3년이나 가꿨는데도 한집에 사는 제가 어이없게도 그걸 관심 두지 않았나 보네요.
요놈 고추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려고 당시엔 사진도 박고 그랬었는데 그것도 며칠이나 흘려버렸네요.
어제는 그 고추가 어떤 고추였는지 물었지요.
보통은 장에서 모종 사다가 키우잖아요?
그렇게 짐작하고 물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어디서 산 것이 아니고 이모님이 준 고추에서 받은 씨앗을 심었는데 그렇게 자랐다는 겁니다.
지금은 심각한 질환으로 병상에서 꼼짝도 못하고 계시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객지(인천)와 시골(고흥)을 왔다갔다했을 때거든요.
그러면서 시골집 남새밭에 채소 같은 걸 가꾸어 객지 자식들에게 보내주곤 했었는데 우리 집에도 여러 가지를 보내주곤 했었답니다.
이모님께선 언제나 빠진 건 자신이 잡수셨으며 나머지 가장 속살이 쪄서 굵고 싹수 좋은 것만 골라서 남 주는 성품이셨는데 그때 보낸 고추도 그것 중 일부였을 겁니다.
아~ 그렇게도 고운 성품이셨던 이모님인데 하늘도 무심하지요.
오늘은 이 글 쓰려고 제가 썼던 글 마구 뒤져서 3년 전 그 시절의 고추 사진도 찾아냈지요.
어쨌든, 척박한 아파트 난간에서 3년이나 가녀린 목숨 붙잡고 피가 말라갔을 그 고추 님!
인제는 그이가 영면에 들게끔 놓아주려 합니다.
고추 님. 더 푸른 세상에 더 고운 자태로 우리 다시 만나요!
그때는 고추도 예쁘지만, 민들레 꽃처럼 한없이 수수하고 아름답게 소생하길 축원합니다.
※ 고추(hot pepper) →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가짓과의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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