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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골무꽃

인터넷 뉴스를 보는 중 무심코 '한국 미기록 식물'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거기 맨 처음 나오는 사진을 가져와서 크기를 확대해 봤답니다.

'아~ 보송보송 저 털 좀 봐. 예쁘다~'

그걸 보자 할미꽃이 곧바로 떠오르고 어렸을 적 그 깊은 추억으로 이끌립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동산인 양 뛰놀았던 나지막하지만 큼직했던 묏등이 있었는데 그 묏등 주변으로 어느 철이면 할미꽃이 뾰족뾰족 올라와 금세 고개를 숙이곤 했었답니다.

달랑 세 가구가 다였던 거기 산골 오두막의 세 채 중 한 곳은 큰댁이었는데, 더 어렸을 적 고아가 된 더 큰댁 우리 문중의 장손인 사촌 형님께서 마땅한 거처가 없어 거기서 더부살이하고 계셨었지요.

저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았던 그 형님! 아~ 나의 큰형님!

그 시절 큰형님이 제겐 신이나 다름없었거든요.

어디 원시 수렵생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겪었던 그 시절 산중은 자유와 고요, 적막과 공포가 늘 함께했었답니다.

형님께선 틈나는 대로 가끔 우리를 데리고 계곡을 오르곤 했었지요.

곧고 반듯하게 자란 나무 중엔 노송이란 게 있습니다.

그 나무와 곧게 자란 시누 대를 베어다가 활과 화살을 만들었던 큰형님이 기억나네요.

활과 화살이 부러지지 않게끔 또 모양새가 나게끔 불을 피워 이리저리 그을리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어느 날은 그렇게 나가서 토끼를 잡아왔어요.

그리곤 담장 한쪽으로 돌담을 둥그렇게 그 지붕까지 노출되지 않게끔 토끼를 배려하여 쌓고서 그 안에 집어넣더라고요.

형님께선 야생 토끼를 집에서 기르려고 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키우려던 토끼가 얼마 못 가서 죽었는데 며칠이나 키웠던지 그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또 가끔은 수리가 산중에 방목해서 키우던 염소(새끼)를 채 가곤 했는데 제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고요, 어머님 말씀으론 염소를 채가는 걸 보고서 악을 쓰면서 산꼭대기로 쫓아가 보면 다른 데는 건들지도 않은 채 내장만 파먹고선 내버렸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또 오소리가 밤중에 나타나 큰 닭, 작은 닭 가리지 않고 채 갔던 일은 정말이지 다반사였던 그 시절입니다.

아이 참 한국 미기록 식물 '제주골무꽃' 탓에 제가 수십 년 과거를 다녀왔습니다.

그 시절의 큰형님께선 지금 부산땅 어디쯤 살고 계실 텐데 몸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96년인가 언제 제가 쓰러져 일주일 남짓 무의식에 들었을 때 형님이 병원으로 찾아와 철철 우시고서 돌아가셨다는데 저는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는 형님입니다.

형님 나의 큰형님! 중근이가 인사합니다.

형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다면 꼭 한 번 찾아뵐게요.
울지 말고 그날은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이지 그때까지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 형님!'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계곡에서 발견돼 '제주골무꽃'으로 명명된 한국 미기록종 식물.

입력시간 2011.10.04 (10:03) [연합]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