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γ 코드 뽑기 γ

자꾸 상대를 초라하게 만들고 상대적 박탈감이

들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것 역시 자신의

마음에 달렸지만, 소위 좀 '못된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럴 때는 '코드 뽑기'를 해야 한다. 못된 사람들의

저자 릴리안 글래스 박사는 "마치 코드를 뽑아 버린 것처럼

그들과의 감정의 선을 끊어버리는 것이 처방"이라고 권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과는 도저히 좋은 관계가 되기

힘들겠다 싶으면 차라리 놓아 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감정의 동요도 일지 않도록

완전하게 코드를 뽑아 버리는 것이다.

 

- 이종선 <따뜻한 카리스마> -

 

 

실과 득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영향력만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를

끊어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내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나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지만, 관계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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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참 간만에 시골에 내려갔지요.

서른 해 마흔 해도 되었음직 한 그 어린 시절 산천으로 바다로 소풍 가던 그 풋풋하고 싱그런 즐거움과 이름 모를 부푼 꿈 가득 담고서 마음과 몸이 시골을 향해 내달렸지요.

말 그대로 너무도 간만에 찾는 길이라 변해버린 도로환경에 익숙하지 않아 내려가는 길은 예전보다 갑절은 더 걸렸답니다.

그럼에도, 우리 셋(어머님과 차량을 운전한 막냇동생 그리고 나)이 지녔던 부푼 꿈(?)은 더했으면 더했지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이것저것 이모님께 전해줄 꾸러미를 잔뜩 들고서 이모 집 현관을 밀쳤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이 휑하던 그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더 정확히는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알게 되었는데 이모님께서 지금 당장에 생명이 몹시 위급하여 천릿길이나 멀리 떨어진 서울의 어느 병원에 긴급하게 후송되어 입원해 계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까진 말입니다.

- 허탈하고 망연자실했다는 이야기 함부로 쓸 일이 아니었지요 -

거기서 이모님과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셨던 어느 어르신과 한참을 나눈 끝에 남새밭에 이모님이 가꾸셨던 여러 채소를 추수하며 주섬주섬 내렸던 짐을 다시 꾸려 차에 옮겨 실었지요.

그리곤 우리가 옛날에 진짜 살았던 그 자리 부둣가 거기에 집터가 있는 그 마을을 찾았습니다.

거기 들러선 마을에 머물 것 없이 준비한 선물만 삼촌(?) 댁에 전하고 떠나고 싶다는 이야길 모두에서 털면서 넋두릴 했었지요.

인심 좋은 삼촌과 숙모께서 우릴 그냥 보내려 하지 않을 게 뻔하니까 어떡하든지 빨리 벗어나자고 말입니다.

거기 삼촌과 숙모님.

친삼촌도 그렇다고 사촌 삼촌(?)도 아닙니다.

어떻게 사돈네 팔촌쯤 되어 촌에선 다 그렇게 연결되겠지만, 삼촌으로 불렀고 숙모라고 불렀지요.

세상에 두 분께서 어쩐지 아시겠어요?

그곳에서 제가 살던 집이 가장 바닷가라서 태풍만 불어오면 조마조마하는데 우리 집을 담벼락으로 하고 그보다 아래쪽에 터를 돋아서 집을 짓고 사셨던 분네들이 바로 그 삼촌네로 통했던 대단한 분들이지요.

그 삼촌이 몇 해 전에 암이라는 엄청난 병마에 시달린다고 하여 우리 식구가 모두 서울로 면회갔던 적이 있었지요.

그때도 시골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너털웃음 함빡 뱉으며 '매 씨는 내가 죽을 거로 보이요?' 하셨던 삼촌이지요.

제가 어느 날 벌초하러 내려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안부나 묻고 가려고 잠깐 들렀는데 시장에 팔려고 말리는지 어디에 쓰려고 말리는지도 모를 빠득빠득 한 생선을 몽땅 제 멜빵 가방에 쓸어담아 주시는 겁니다.

그때 제가 그렇게 반대하고 소동(?)을 부렸어도 기어이 가방 가득 채워서 자식놈 시켜 절 읍내(고흥) 터미널까지 실려 보냈던 그분들이 삼촌·숙모였던 분이거든요.

그것이 맘에 걸려 제 딴에는 삼촌 얼굴만 확인하고 잽싸게 내빼자는 수작이었는데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그것은 물 건너가고 맙니다.

왜냐면 너무도 잘 아는 많은 분이 먼저 쉼터에 나와 담소를 즐기고 계셨거든요.

'아따 이게 누구야?'로 시작하여 여기저기서 손 맞잡으며 안부가 오가는 중 청천벽력같은 소리도 새어 나옵니다.

'평율이 보러왔구먼. 걔? 진즉 갔어. 늦었네! 작년… 에 갔지…'

'평율'은 제가 말하는 제가 보고 싶은 온 가족이 만나려고 찾아갔던 삼촌님의 함자입니다.

- 맥이 확 풀리더라 그 말도 함부로 쓰지 맙시다 -

이쯤이면 제가 이끌어야 옳겠지요.

'어머니 여기까지 왔으니 숙모한테 다녀옵시다'

그러고 다시 어머님께 신신당부했었지요.

숙모님 앞에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보여선 안 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냥 있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하며 말입니다.

험한 꼴 많이 보아오신 어머님은 오히려 저를 다독였지요.

'동생 있는가?'

숙모님이 문을 밀치고 대뜸 뛰어나와 반기자 어머님이 늘 지내는 말처럼 별것도 아닌 일처럼 말문을 그렇게 엽니다.

'아따 이놈의 모기 징그럽대. 중근이 얼굴 봐 떡이 됐지?'

'아따 성님 어서 오시오! 이 게 뭔 일이당가?'

오십 대 활기 창창한 숙모님이 더욱 부산하게 우릴 맞습니다.

정말이지 저 아버님 산소에서 벌초하며 온몸을 산모기가 덮어버렸었지요.

숙모님과 조근조근 차분하게 나누면서 준비한 선물도 꺼냈는데 우리가 외려 가져간 선물보다 더 귀한 해산물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엔 삼촌께서 하셨다는 말씀인데 그랬다네요.

제가 공동묘지 산 중을 헤매느라 고생하는 게 측은했던지 아버님 산소를 한참 아래 도로 밑의 공지에 지니고 계신 굴착기로 옮기려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숙모님이 반대하셨다네요.

그 땅이 당장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나타나서 더 큰 일을 내고 말 테니 그때 일은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되묻던 과정에서 그것이 철회되었다고 숙모님이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그 근방에서 아려왔습니다.

- 정말 가슴이 아린다는 이야기 인제는 속으로만 해야겠습니다. -

저는 내내 술이 당겼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참기로 했던 그 술이 당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금주가 풀리려면 쉰닷 새도 더 남았는데 그것을 꺾을 순 없었지요.

마지막으로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 큰댁마을을 찾았답니다.

이때쯤엔 준비한 선물이 부족하여 지나는 거리마다 가게가 있는지를 찾아 그것을 보충해 갔었지요.

거기도 역시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반가운 면면들이 다가와 인사를 여쭙네요.

초입에서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버릇이 되어 먼저 큰집(작은집)에 올라갔었지요.

그리고 작은아버님 만나 정겹게 안부 여쭙는 동안 어느새 사촌 동생 내외와 조카들이 함께 들어오네요.

녀석은 제가 사는 광주에 지내지만, 하는 일이 천차만별이라 얼굴 보기가 어려운 동생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기서 자려고 왔는데 글렀나 보다.' 했더니 녀석이 대뜸 제수님에게 소리치며 빨리 올라가자고 보채네요.

당장 새벽에 일 나가야 하니까 올라가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거에요.

그건 그거고 저희는 작은집에 건넬 선물을 마다함에도 억지로 대충 건네고서 진짜 큰어머님이 계시는 큰댁을 찾았답니다.

현관문을 밀치면서 그랬지요.

'큰엄마 제가 왔습니다!'

젊게 보이는 웬 처자가 한쪽 방문을 열고 나와 묻습니다.

'누구세요?'

이 순간 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크게 실수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댁은 뉘시오?'

그때쯤 거실에 누워계시던 큰어머님이 일어서며 알아보고 반기십니다.

'오메~ 이게 누구다냐? 어서 와라!'

뒤이어 방안에서 큰형님 나오시고 어머님과 막냇동생이 지팡이 짚고서 들어섰지요.

'아차차~ 형수님이구나ˇˇ 이런 실수를 어찌하나?'

그때야 새로운 형수님이란 걸 깨닫습니다.

마을의 위쪽에 자리한 큰(작은)댁에서 내려올 때부터 컴컴했었는데 그때쯤엔 이미 오밤중입니다.

더는 옮길 만한 곳도 없고 하니 거기서 묵으려고 다짐하려는 찰라 조카(형님의 자식)가 여자 친구와 함께 곧 들어올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이야기 그렇게 쉽게 내뱉어선 안 되겠더라고요. -

한참이나 요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고서 조카 내외(?)와 더불어 다과를 마칠 즈음 저의 이동 책임자 막냇동생은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드네요.

그 찰나 예쁘게 생긴 형수님 부랴부랴 치우고서 바닥에 담요며 베개를 집에 있는 건 모조리 깔고 펼친 거 같았습니다.

=== 모두 굳나잇 ===

광주에서의 버릇이 거기서도 예외인가요.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어서 어느새 잠이 깹니다.

'우르르 꽝꽝! 두두두두 주룩주룩…'

뇌성 번개 요란한 걸 보니 분명히 밖에선 비가 쏟아지네요.

번개 치고서 맘속으로 그걸 셉니다.

'하나 둘 셋 넷…'

열이 넘어서 굉음이 터지네요.

참 멀리서 번개가 일었지요?

그래도 가로등이 보이는 문짝은 뻔쩍뻔쩍 요란했지요.

다섯 시 반을 넘어서니 도저히 답답해서 못 누워 있겠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조용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거기 마을 초입엔 회관이 있고 그 앞엔 또 조그만 정자가 있거든요.

거기가 한마디로 그 마을의 광장이지요.

정자로 다가갔는데 멀쩡한 지붕이 있음에도 바람까지 불어대니 한가운데를 빼곤 모조리 젖었습니다.

우두커니 앉았다가 서 있기를 반복하며 뒤척이고 있는데 누군가 비옷을 입고 들에서 들어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요.

'비도 오는데 거기서 뭐하냐?'

'아니 그냥 심심해서요'

제가 앉은 정자에 그분도 걸터앉았는데 우의 속 그분의 얼굴을 보니 작은아버님이 아니겠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제게 부탁하더니 못 미더웠던지 직접 큰댁 문을 열고서 큰형님을 불러댑니다.

그러고서 아까 제게 말했던 그 내용(비가 많이 와서 모두 떠내려가고 어쩌고저쩌고하는데…)을 전하면서 뭐라고 당부하시네요.

'아~ 이 난리 치는 날에도 저 고생해 만들어서 우리 집에도 보내셨구나!'

제가 또 다시 모두에게 엄포를 놨었지요.

'아침 일곱 시 정각이 되면 일 초도 어김없이 바로 떠나는 겁니다.

우리는 아침밥 안 먹고 그냥 갈 거에요. 아시겠지요?'

당연히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겠지요.

- 퍼붓는 이 빗속에 절대로 못 보낸다. -

- 일단 한술 뜨고서 기다렸다가 가라! -

수많은 말씀이 쏟아졌지만, 굳이 제 이름까지 들먹여야 했었답니다.

그런데 저의 에누리는 몇 분가량 깨지고 말았답니다.

막상 떠나려고 차를 몰아 가까이 세우니까 모든 게 뒤집히며 초스피드로 바빠졌지요.

제가 그것이 싫어서 급하게 떠나려 하는데 여기저기서 곡식이며 별것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빨리 떠나려는 부추김 탓에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우린 그 정겨운 살붙이는 헤어져야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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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의 이모님에게 나는 과연 뽑아버리고픈 코드가 아니었을까?

우리 집 모두를 든든하게 지켜줬던 삼촌에게 나는 수많은 코드 중에 과연 어떤 코드였을까?

못된 무리의 입에서 '중근이가 빨갱이'라는 해괴한 망언까지 들으며 괴로워했을 친인척에게

'중근'이라는 무모한 코드는 어떤 가치라도 취급될 수 있었을까?

 

담요에 엎드려 잠은 안 오지 뭉그적거리다가 휴대폰으로 녹음했지요

소리가 너무 작아 쿨에디트로 살짝 키웠답니다.

※ SPH-S1450 ♣ 쿨에디트 2.1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