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신 난다. 드디어 내가 백수로 승인되었다~
카페에서 어제 오후 다섯 시 반쯤에 보낸 메일을 저는 방금 서 봤네요.
글 제목이 '2012년 협동조합의 해, 협동조합 만들어봅시다!!!'이라고 써졌기에 다소 황당하긴 했어도 제게 편지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일말의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답니다.
'협동조합'이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기에 대충 읽고서 저 아래에서 우리 카페로 연결된 카페 이름을 눌렀습니다.
그러곤 망설이지 않고(아니, 정확히 어딜 눌러야 할지 잘 몰라서 머뭇거리느라고 10여 초 지체한 것도 같은데)
'내 정보'를 눌렀더니 제 자격이 '준회원'으로 되었는 겁니다.
'준회원'만으로는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기에 시험 삼아서 '글쓰기' 버튼을 눌러 봤지요.
어라! 그런데 그것이 지체 않고 군더더기도 없이 곧바로 활성화되지 않겠습니까?
'앗싸 됐다! 나 백수로 인정받았다!!!'
미친놈! 백수 놈팡이 된 것이 무어 그리 좋아 날뛸 일이라고…
쯧쯧 맛이 갔지 맛이 가, 돌았군. 돌았어…
그리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대략 스무 해쯤 전에는 그래도 매달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일터에서 지냈답니다.
처음엔 별 무리 없이 잘 지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에 회사와 저는 의견이 엇갈렸지요.
끝내 밀어내더군요.
하여 그 당시의 전국적 백수조직(전국 해고자 어쩌고저쩌고 투쟁위원회)에 들어가 다시 들어갈 길에 대하여 방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별짓을 다 했건만, 먹고 살길은 얼른 터지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도리없이 간간이 외도(?)를 일삼았습니다.
당시엔 마누라도 있고 얘들도 있었거든요.
사지 삭신 멀쩡한 놈이 허구한 날 백수로 죽치려니 가족 볼 낯이 섰겠어요?
돌이켜보면 90년대 초반에 우리의 경제가 지금보다는 나았던 것 같네요.
그 외도라는 것이 다름 아닌 날 일을 다니는 거였거든요.
어느 시기엔 못 통을 차고 목수도 했었고요, 대다수 날 일은 안전벨트에 용접선 끌고 철골 기둥을 타는 거였습니다.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불리는 사람이 주로 그런 부류 일(철골 공사일)도 하지요.
그렇게 날 일에 몰두하며 그럭저럭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 날 밤에 제게 뜻하지 않는 큰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 사고로 말미암아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일었지요.
일주일 남짓 무의식에 들었다가 갑자기 기적처럼 의식이 일부 회복되긴 했어도 몸 상태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더군요.
두뇌의 상당한 부분을 잘라냈다고 그러더군요.
1년인가 2년 남짓 병상에 있었지만, 더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매여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치료 효과도 거의 없는 물리치료에서도 복창이 터졌지만, 치료비 나올 구멍도 없는데 마냥 누워 있을 수도 없잖겠어요?
병원에서 나오기 직전에 별의별 검사를 다 했습니다.
장애진단을 해야 했었기에 말이에요.
가장 먼저는 아이큐(I.Q 지능검사)부터가 엄청나게 낮은 수치로 나오더군요.
다음으로는 신체 전반이었는데 정말 더 가관이었답니다.
우선 눈 시력 양쪽이 모두 마이너스로 엄청나게 안 좋은데다 초점마저 따로따로 노는 복시로 변해 버렸네요.
다음으로는 한쪽 귀는 약간 들리는데 반대쪽 귀는 엄청난 난청으로 말미암아 이물질(물이나 고형물 등)이 들어가면 아프기만 하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감각도 없는 거 있지요.
한쪽 귀만 들리지 거기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혓바닥이 꼬여 말을 만들어내기도 몹시 어려운 언어장애우입니다.
그래서 무슨 소리가 나면(누군가 부르면) 들리기는 하는데 그 방향이 어딘지는 전혀 몰라요.
다음은 코입니다.
아예 코가 지닌 기능을 잃어버린 거 같아요.
냄새를 못 맡거든요.
그래서 고추장이 든 음식이랄지 집안에서 고추라도 볶는다면 그날은 거의 죽습니다.
그 밖에도 아주 가는 입자의 뭔가(미숫가루, 연기 등등)에 노출되어도 절반은 죽지요.
왜냐면 코가 제 역할을 못하니까 식도로 들어갈 것이 기도로 들어가 버리거든요.
바로 사래 걸려 버립니다.
얼마나 심하게 기침을 해대겠습니까?
이번엔 조금 더 내려와서 팔다리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아! 목 부위도 포함해서 말해야 옳겠네요.
제가 외부 온도가 차갑지 않고 포근할 때 가만히 있으면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 비장애인하고 구별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날이 춥거나 음식 같은 걸 들라고 하면 온몸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떨리지요.
뇌성마비 환우들이 지내는 일상을 지켜보셨나요?
그와 매우 흡사하지요.
눈코귀입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게 없습니다.
으흠. 한마디로 그냥 미치지요.
그렇게 어렵사리 나날을 이어가던 2006년 어느 날 제 인생에서 또 한 번 대변혁이 일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90년대 초기에 제가 몸담았다가 밀려났던 그 일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갔었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와 마찬가지로 밀려났던 동료 대다수가 오랜 투쟁(?)으로 먼저 복귀해 일했었던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장애로 말미암아 제가 갈 수 없게 되자 친구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아내가 대신 일하게끔 회사에 협상했던 겁니다.
그 덕에 굶어 죽지 않고 그럭저럭 버팀목이 되긴 했었는데 그해 2006년 9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그라져 버렸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아내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와 더불어 애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갔지요.
몇 년에 한 번꼴로 간간이 그쪽 사는 모양새가 들리긴 합니다만, 알고 싶지도 않고 해서 일부러 찾으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 초에 제가 큰아들을 찾았던 거 딱 한 번을 빼고는 말입니다.
집 나갈 때 중학생이었던 녀석이 어느덧 자라서 대학생이라고 하질 않나!
또 군대에 있다고 하질 않나…
아무리 관심 끊는다고 해도 그들의 건강 심지어는 생사마저도 끊고 싶겠어요?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국방부에 메일을 넣었지요.
병무청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나중엔 녀석의 중대장이란 놈이 또 전화했더군요.
아차!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제가 엄청나게 고마워했던 진짜 이유가 뭐였었느냐 하며는 요?
지지난해인가 언제 장애인연금이 생겼잖아요?
그때 저도 당시까지는 '지체장애 2급'이었기에 동사무소에 그걸 신청하러 갔었지요.
그랬더니 장애를 증명할 최근 6개월 내의 병원 처방서나 진료 기록을 제시하라고 하네요.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까 어디가 부러지기 전에는(실제로 몇 년 전에 무릎에 인대가 나가서 수술한 적이 있긴 있음.) 절대 병원 같은데 안 가거든요.
진료 기록이 있을 리가 있나요.
그래서 별수 없이 예전에(장애 입었을 때) 수술했던 병원을 찾았더니 수술한 지가 10년을 초과했기에 그랬던지 병원에 저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았지 않았네요.
대수술도 하고 1, 2년 남짓 입원까지 했었는데 말입니다.
도리없이 처음부터 장애진단을 다시 끊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원체 심하게 상했기에 회복되지 않는다네요.
그러고는 장애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지체장애'에서 저로선 난생처음 들어본 '뇌병변장애'로 말입니다.
저는 지금 '뇌병변장애 2급' 보유자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갖고서는 장애연금 수가가 아주 낮다고 하네요.
아내도 없이 늙은 어머님과 단둘이 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럽니다.
'지금 보호자가 아내로 되어 있으니까 아내와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아내가 집 나가서 어디 산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음을 보증인 셋 이상의 날인으로 증명하라네요.'
죽었다 깨도 동료에게 손 벌리기 싫어한 놈이 자존심 팍팍 죽여서 친구놈한테 문자를 넣었었지요.
그날부로 한 놈이 조퇴하여 도장도 파고 서류도 가져가서 석 장을 모두 채워 다음 날 도장을 찍어 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최고 수준의 장애인연금수령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91,200원'을 받았는데 지난 4월부터 대폭 올라서 '94,600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걸로 어머님은 어디선가 들어본 정보라도 있었던지 틈만 나면 이렇게 힐난(?)하곤 합니다.
'남들은 집도 절도 다 있는데도 몇십만 원씩 그거 받는다는데 넌 똑똑하다면서도 달랑 십만 원도 못 받느냐! 똑똑하긴 개똥을 똑똑해! 똑똑한 놈은 다 죽었던 가 보다.'
88년 국민연금이 생기면서부터 월급에서 자동으로 떨어진 건 사실이었지요.
그러다 92, 3년에 제가 일터에서 밀려나면서 자연스럽게 그것도 낼 수 없으니까 해지했었지요.
하필이면 생계비도 없어 그 막막한 중에 날 일 다니다가 사고가 터졌으니 국민연금에서 지급하는 장애연금 대상자가 못되고 만 것입니다.
거기 대상자에 들었다면 월 3, 4십만 원의 월급쟁이가 될 테니까 문화생활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을 거 같네요.
하여튼, 수십만 원은 못 되고 달랑 9만 원을 조금 넘지만, 그거 타게 된 것도 모두 친구들 덕인 거 같아 너무도 기쁩니다.
몇 년 전 친구들이 그거 보증서 떼줬을 때의 기쁜 맘이 당장 손에 든 것은 없지만, 꼭 그때의 기분만큼 즐거웠답니다.
이상으로 긴 사설을 마칠게요.
올해 우리 나이로 딱 쉰 살이 되었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는 저보다 형님도 많이 계실 것이고 서너 살 터울로 제 동년배도 많을 것이며 갓 서른 마흔 줄에 들어선 동생들도 꽤 많겠지요?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풍파를 만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명은 또 모두가 다르기에 자기 자신한테만 특별히 보내준 크나큰 선물이라는 생각도 같이 합니다.
어떤 선물이라도 달게 받고 그 좋은 선물 독차지하지 말고 모두가 나누도록 우리 맘먹어요.
아시겠지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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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는 살아 있다 → 백수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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