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

 

푹 쓰려졌었는데 어슴푸레 잠이 깨자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세수부터 하고 나야 정신이 차려질 거 같았습니다.

오늘 낮의 일입니다.

홀라당 벗어던지고 샤워기를 돌렸더니 정말 쓰림 쓰림 손등이 쓰려 왔습니다.

손등에 벌겋게 핏덩이가 굳어서 달라붙어 있었는데 거기에 샤워기 물이 쏟아지니 아프지 않았겠어요.

딱 어제 그만 때쯤의 일입니다.

갑자기 친구 생각이 났지요.

전에 언젠가 썼던 '♣ 내 친구 마누라가 참 예쁘다. ♣'에 나오는 그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와 놈의 예쁜 마누라에게 새해 첫날 문자를 보냈다가 엄청나게 민망해지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민망해질 수밖에 없었던 환장할 처지를 어떻게든 바로잡겠다고 그 순간은 굳게 다짐(그리고 제수님 죄송합니다.)도 했건만 제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날까지 와버렸던 거거든요.

어제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라고 기왕 생각난 김에 기어이 만나고자 맘먹었지요.

한 만원 정도를 들면 오가는 택시비가 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그것도 부담 간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모르는 길이라고 언제까지나 가슴앓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정도의 객기 탓도 있었습니다.

나가기 전에 먼저 '다음 지도' 사이트에 들어가서 우리 집에서 목적지(외환은행 하남공단지점)까지의 길을 추적했답니다.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자전거의 뒤쪽 바퀴는 바람이 조금씩 센답니다.

그래서 요즘 자전거 타고 어디 갈 일이 있거든, 펌프를 싣고 나다니는 참이지요.

어제도 그랬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2차원의 평범한 길하곤 아예 딴판으로 도로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심한 경사길이 몇 십미터 몇 백미터씨 이어져 있으니 처음의 바깥날씨 차가웠던 건 금세 물거너 가버리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정말 죽겠더군요.

헐떡 거리는 몸으로 기어이 거길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친구네가 아닌 다른 가게로 들어가 버렸거든요.

간판도 비슷하고 건물 모양도 흡사해서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안에서 일하는 분이 사연을 묻기에 허겁지겁 인사하고 나왔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 그것이 어제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조짐인 것도 같습니다.

 

 

그러든 저러든 마침 친구가 어제는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이놈 잘 만났다. 너 오늘 나한테 잘 걸렸다!'

애초에 거기 가기 전엔 전혀 그런 맘도 없었는데 어제는 무슨 마귀가 쓰였던지…

녀석을 보자마자 제 심보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 좋지 더 나가면 잔소리가 된다는 진리는 제 머릿속엔 아예 없어지고 온통 비난과 질책으로 가득 차버렸지요.

지금 생각하니 그건 대화가 아니라 악랄한 고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녀석이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거기는 공단이거든요.

거기다가 친구가 하는 가게는 공단에서도 매우 붐비는 지역입니다.

손님들은 왔다갔다하지.

뭔가를 주문하면서 가격을 묻지.

또 뭐가 있는지 묻지.

카운터에 바코드 찍는 기계가 있는데 제가 그거 쓸 줄을 모르니 무슨 소용이에요.

진열한 대부분 상품에는 가격표시가 붙었기에 그건 어떻게 처리해 볼 수도 있었지요.

그러데, 정작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거기 금고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제가 모르거든요.

잔돈을 내 줄 수가 있어야지요.

물건값이 천 원, 이천 원으로 딱딱 맞아떨어지고 또 손님이 그에 합당한 지폐가 있을 때만 장사할 수 있었답니다.

오셨던 대부분 손님이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분들은 제 하는 꼴이 얼마나 가당찮고 기막혔을까요?

심지어 '천원 이하거나 천오백 원 이하는 무조건 천원을 달라!'

또 '천오백 원에서 이천오백 원 사이는 이천 원을 주라!'

제가 그랬거든요.

딱 어느 한 분이 천원이 못 되는 물건을 샀는데 천 원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엄청 몰려들더군요.

부랴부랴 마나님한테 전화를 넣었더니 금방 온다고는 했지만, 시내에서 거기 공단에까지 들어오는 게 금방올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공단의 퇴근 시간하고도 맞아떨어졌는데 말입니다.

또하나 괴로운 것은 손님의 상당수는 동남아에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였거든요.

그 경황 없는 중에 제가 '쌀라쌀라'가 되겠습니까?

경황이 있다고 해도 그 흔한 '보디랭귀지'라도 제대로 못 썼을 판국인데 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 혼이 그 순간 나갔습니다.

그럭저럭 헤매는 사이 친구의 마나님과 큰 아들놈이 왔습니다.

카운터에 거래대금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네주고서 지금 기억도 없는데 뭐라고 몇 마디를 더 하고서 간다고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었고 또 왕복 4차선쯤의 넓은 길이라서 오가는 차량 불빛에 의지해 가게에서 나와 한 3, 4백 미터 아니 5백 미턴지도 모르겠네요.

그 정도까진 비틀거리면서도 타고 올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삐끗하면서 그냥 고꾸라져 버렸습니다.

거기 들리자마자 너무도 목이 말랐기에 막걸리 두어 병을 순식간에 비워버렸거든요.

분명히 그놈 막걸리 탓이 컸을 겁니다.

그 순간 도로에 손등이 까인 겁니다.

피가 질질 흘렀겠지요.

일어나서는 타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걸었습니다.

차들이 너무도 쌩쌩 달리니까 몸이 움츠러들고 짜증이 일었습니다.

'이런 x 같은 거 자전거는 뭐 차도 아니냐! 해볼 테면 어디 붙어보자!'

바로 그 순간부터 목숨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그리고 편도 2차선 중에서 중앙 차선은 달리는 차에게 내주고 갓길 쪽 차선 하나는 제 것이었습니다.

뒤에서 아무리 빵빵거려도 쳐다보지도 않았답니다.

그 차종이 뭐가 됐든 뒤를 보지 않으니까 모를 것 같아도 스쳐 지날 때의 엄청난 후폭풍과 노면의 떨림으로 그것이 8통일지 20톤일지를 가늠했을 뿐입니다.

얼마큼 죽자사자 걸었는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냥 누어버렸지요.

상상해 보세요.

'왕복 4차선 공단의 그 바쁜 길 차도에 자전거 세워놓고 웬 미친놈이 누워 있다.'라는 걸 말입니다.

걸을 땐 빵빵거리는 소리가 처음에만 심했지 나중엔 들리지도 않았는데 누워 있으니까 정말 엄청나게 크게 들리더군요.

여러분도 도로 위에 귀를 바짝 대고 한번 들어보세요.

그것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실 겁니다.

그렇게 누워버린 지 오랜 시간도 안 지났을 땝니다.

누군가 차를 세워 놓고 제 곁으로 오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뭐라고 했습니다.

기억할 순 없지만, 그렇게 누워 있으면 몸에 해롭다는 투의 말쯤 됐을 겁니다.

그분 부축으로 일어났지요.

다시 가던 길로 계속하여 자전거를 끌고 갔지요.

얼마쯤 갔는데 전에 없던 전혀 모르는 도로형국이 되어 있네요.

난감했습니다.

'인제 더 이상은 갈 수 없겠구나…'

그렇게 맘먹은 순간 죽음과도 같았던 미친놈의 도로 활보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길옆의 단단해 보이는 가로등에 묶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그때가 차도에서 갓길로 2~30미터쯤 끌고 와서 시내버스 승강장 바로 옆의 가로등에 묶고 난 뒤였거든요.

승강장 표지판에 거기가 '광주여자대학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쳐다보니 아까 뛰쳐나갔던 친구이름이 자막에 뜨네요.

'너 어디냐?'

'응. 광주여대 앞인데 길이 희한하게 생겨서 더는 못 가겠다. 그래서 자전거 묶어놓고 가려고 그래!'

'꼼짝 말고 거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곧 갈게.'

금방까지만 해도 요놈이 미워서 죽겠더니만 어느새 요놈이 그 순간엔 하느님처럼 보였습니다.

얼마쯤 지나니까 녀석의 마나님하고 같이 왔네요.

자전거가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맘 급한 녀석도 뒷좌석에 집어넣으려고 생 x을 쌉니다.

그렇게 저렇게 해서 집에 들어왔지요.

녀석과 계 마누라는 얼른 가봐야겠다며 내려주곤 바로 돌려서 가버립니다.

저도 집에 들어와선 그대로 떨어져 버렸지요.

그러고서 이 글의 처음이 시작된 거랍니다.

 

제가 샤워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집은 공단에서 광주여대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있거든요.

그런데 뭣 때문에 가게에선 우리 집 간다고 말해놓고선 그 반대쪽으로 가버렸는지 그 사실을 샤워하면서 깨달았던 거거든요.

지금의 우리 집으로 이사 오기 전인 십여 년 전에는 광주여대 근방에서 몇 년을 지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광주여대까지 갈 것도 없이 한두 블록 못 미쳐서 살았으니까 거까지 가게 된 것도 의문이고요.

모든 게 의문입니다.

거기 생판 모르는 도로가 아니었다면 과연 저는 어디로 가려고 그 길을 계속 따라갔었던 건지 의문을 넘어 인제 불안해지기까지 합니다.

97년쯤에 그 지역 살 때 장애를 입었었고 오랜 병원 생활이 싫어서 잠깐 퇴원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어느 순간 간질환자처럼 저도 모르게 쓰러진(발작) 적이 있었거든요.

퍼뜩 그쪽으로 의심이 가네요.

집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땀 뻘뻘 흘리고서 거기 목적지에 당도해선 정신을 놔버리고 남의 가게로 들어갔던 거에서부터 그 못된 병세가 시작하여 결국 돌아올 때는 간을 배 밖에 꺼내놓고도 태연하게 도로를 활보했던 거 그리고 그 잘못된 과정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무슨 절차나 되는야 태연하게 이어갔다는 모든 것이 장애의 후유증 같습니다.

제가 뇌병변장애 2급이거든요.

그 모든 걸 다 접고서 인제야 사죄합니다.

이 글 쓰려고 다시 확인해 보니까 도로 가운데를 망나니처럼 미친놈처럼 활보했던 그 거리가 장장 3.7킬로미터나 됩니다.

그 머나먼 길을 비틀거리는 거북이걸음으로 막아선 듯 걸었으니 제 뒤에 따라오던 차들이 얼마나 속 터졌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갈아버리지 않고 끝까지 참아준 선량한 운전사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 고마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인제 두 번 다시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끔'
제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다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더욱 행복해지십시오!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