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인심이 본래 이랬던 건 아니었는데…
1박 2일로 수도권(인천)을 나들이 한지도 벌써 사나흘이 지나가네요.
어머님과 저 그렇게 둘이서 지난 주말에 인천에 간 까닭은 간단합니다.
이유는 어머님의 친언니인 저의 이모님 문병이 목적이었고요,
또 공교롭게도 같은 하늘 땅 인천에 살면서도 서로가 어떤 처지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비슷한 처지의 큰어머님 문병도 겸할 요량으로 떠났던 거지요.
올해 여든이 되는 우리의 이모님은 꼬막만 한 남새밭이 있는 시골집과 자식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사는 인천을 오가면서 지냈었는데 어느 날 시골에 내려갔더니 치매가 심해져 꼼짝없이 쓰러졌는데 아들(사촌 형님)이 와서 모셔갔다는 이야기만 듣고는 이번에 문병에 나선 거고요,
큰어머니는 수십 년 전에 도회지에서 정착한 자식들의 뒷바라지(아기 돌봄, 기타 집안 살림거리 등등) 차 올라왔는데 지금은 인천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거기는 중풍으로 쓰러지셨답니다.
그 얘기 들은 지도 벌써 서너 달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 두 번째로 문병하러 갔던 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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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는 당장에 위급하다고 하기에 남동구의 어느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이모님에게 들렀답니다.
이모님은 자꾸만 눈을 감았습니다.
위급하다는 소식 듣고서 허겁지겁 달려온 어머니기에 다른 환우에게 큰 폐가 될 만큼 자꾸만 당신의 언니를 깨우고는 기어이 이모님 입으로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자신이 누구라고 말하면서 갓난애 어르듯이 '내가 누군가. 언니?'를 외쳐댔지요.
'나 0심이야. 언니 내가 누군가. 응?'
'다 죽고 언니하고 나밖에 안 남았는데 나 0심이여. 언니 나가 누군가. 응?'
몇 번이고 그렇게 보채니까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몰라. 몰라!'를 거듭거듭 내뱉다가 겨우 한마디 했습니다.
'니가 0심이냐?'
이모님은 음식을 삼키지 못해 코에 호스를 넣고 환자옷도 없이 가운만 덮고서 누워계셨지요.
'0심이'라고 말하는 그 소리를 들으려고 어머님은 백번 천 번이나 외치는가 싶었습니다.
뻔히 듣고 계실 텐데도 '다시는 못 볼 거 같애. 언니~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절대로 죽지 마~'
'엄니.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 겁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왜 그렇게 말해?'
제가 그 자리에선 그렇게 말렸지만, 어머님은 전혀 듣지 못했을 겁니다.
체념한듯한 서글픈 기류를 감지하면서 우린 두 눈 가득 머금고서 물러나 이번엔 부평 쪽으로 발길을 돌렸었지요.
거기 누워계실 큰어머님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었거든요.
이모님한테 머문 시각이 길어져 우린 예상대로 그날 밤(토)은 큰어머님의 둘째 딸인 사촌 누이한테서 보내기로 했답니다.
큰형수(이모님의 큰며느리) 님의 차에 올라 인천에서는 누구나 다 안다는 부평의 '모 다방' 이름을 댔더니 자신도 뻔히 안다면서 그곳에 내려주고 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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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누님이 데리러 왔습니다.
너무도 오래간만에 만났기에 올라온 목적도 잃고서 하마터면 '부어라. 마셔라' 할 뻔했었는데 홀로 앉아서 두 홉짜리 소주를 다 마시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는 훗날을 기약했었답니다.
평소의 잠버릇대로 새벽에 일어났는데 지리도 모르지 길눈도 어둡지 그 답답함을 견디기 어렵더군요.
이윽고 동이 완전히 트이자 대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아주 작은 메모장(일수놀이 하는 놈들이 무료로 주는 메모장)에 집의 위치며 번지수를 적어가면서 후일을 도모하며 내려갔습니다.
거기가 청천동이라는 것도 살짝 더 내려갔더니 아담한 산책로(공원)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거기 산책로 입구에 들어서자 벤치도 놓여 있지 더 나아갔다가는 메모장에 적는다 해도 헤맬 것도 같아 거기서 쉬기로 작정했습니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벤치 한쪽엔 이미 초로의 남자가 앉았더군요.
'안녕하세요?'
'…'
인사를 건넸지만, 묵묵부답입니다.
개의치 않고 그분(②) 곁에 있는 벤치(①)에 조용히 그냥 앉았습니다.
'거참. 이상하다~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그냥 고개만 까딱이면 될 것을…'

아주 짧은 순간 그런저런 의구심에 휩싸여 있는데 이 양반 벌써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립니다.
이제는 황당합니다.
십수 년 전 제가 보행 훈련차 당시 살았던 집 근처의 어등산을 오르며 꼬박꼬박 두 달을 채운 적이 있었지요.
거기 등산로에서 남녀노소 누구와 만났어도 우린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눴답니다.
'아휴~ 고생 많습니다!'
'날씨 참 좋습니다!'
'아휴~ 이 녀석 아주 용감하구나!'
그렇게 너나들이하는 동안 어느새 안면이 트여 거기 등산로 마니아 그룹도 알게 됐지 뭐에요.
어느 날은 누군가 덥석 아는 체하여 누군지 몰라 의아해하니까 자신을 자세히 일러줍니다.
그분은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환우였는데 제가 기억하지 못했던 걸 그분이 먼저 알아보고 다가섰던 거였거든요.
그분이 거기 산악회였든가 아니면 자연보호회였든가 거기 회장 직함을 가졌는데 날이면 날마다 등산로 전체를 청소하고 다녔던 걸로 기억합니다.
또 약수터에선 산에 오를 때마다 넘어지고 굴러서 피투성이가 된 제 몰골을 봐왔던 어느 나이 드신 어느 약수터 마니아께선 중풍이라고 저의 몸 상태를 진단해 주곤 했었답니다.
그런저런 상념에 빠졌다가 문득 고개가 바로 눈앞의 빨강 차에 살짝 놀라며 머물렀습니다.
왜냐면 거기 차 안에서 귀신(?)이 움직이는 걸 본 탓이지요.
뭔가 잘못 봤나 싶어서 몇 초를 더 기다렸더니 역시나 뭔가가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움직이는 겁니다.
'참 저놈의 귀신은 겁도 없는 모양이다. 너는 죽었다. 인제'
놈의 꼬리를 잡거든 실제로 절반은 죽여 놓을 작정이었습니다.
전에 언제 제가 가위눌림을 당해 꼼짝달싹 못하는 환경에서도 놈을 끝까지 물어뜯으려다 불쌍해서 놔 주고는 눈을 뜨고 정체를 알아보니 그것이 귀신이 아니고 베개였던 걸 기억하거든요.
왼눈을 감았다 다시 오른눈을 감기를 반복하면서 놈의 정체파악에 들어갔습니다.
만약에 제가 일어서서 다가가면 놈이 도망갈 것 같아 온전히 제 시력(양안이 모두 마이너스)만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잡았습니다.
그 고얀 놈의 정체는 빨강 차 안의 백미러에 비친 도로를 오가는 차량이었던 겁니다.
귀신 하나 낚으려 했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니 허탈했었답니다.

고개를 살짝이 내려 앞을 보니 사방에 비둘기가 다가와 난리가 났습니다.
흐트러진 균형감각 탓에 요즘은 세상 어디를 가나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데 제 등산화 발등을 넘나들며 이것들이 아주 제 세상입니다.
'요것들 봐라!'
그러면서 발을 살짝 들어봤지요.
후루루 잽싸게 피해 버리네요.
그러고는 인제 다시는 제 발등까지 접근하지 않았답니다.


다시 누이 집을 찾아 올라가서 끼니도 해결하고 나중에는 그토록 궁금했던 큰어머님을 찾아갔었지요.
마침내 큰어머님을 보니까 완전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지난번에 왔을 땐 거의 지금의 이모님 수준이었기에 너무도 암담했었는데 이번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말도 하지요.
또 가끔은 스스로 일어나 보행운동도 한다지요.
누님 말씀을 들으니 처음 쓰러져서 무의식일 때는 정말이지 거의 체념 직전까지 갔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산소호흡하고 이모님이 그런 거처럼 호스로 식사하고 점차로 회복되어 병원도 몇 번 옮겨가고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그간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음을 전해주더군요.
'이모님도 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 우리 이모님도 정신이 강하니까 살아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 병원비 / 병원비만 적다면 우리 이모님도 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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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인천 터미널에서 한 장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좀 전에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빼 봤더니 이해가 갑니다.
공원 벤치에 그 어르신이 저를 보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상황이 적극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제 얼굴이 마치 외계에서 나타난 ET 같았거든요.
처음 수술했을 땐 그래도 그렇게 기형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십수 년이 흐르니까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수술하면서 그랬거든요.
최소한 10년에 한 번씩은 대그박을 갈아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대그박은 그대로인데 그 아래쪽 볼은 점차로 자라나서 십수 년이 지나니까 완전히 가분수 얼굴이 돼 버렸군요.
갈만한 처지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사는 거죠 뭐.

그나저나 내려오다가 어느 휴게소에서 우리가 탈 '한일고속'을 못 찾고 헤매고 있을 때 속 시원히 가리켜준 '삼화고속' 운전사님! 고맙습니다.
어쩌면 삼화고속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천 터미널에서 거기 삼화고속 차가 많이 보였기 때문에 휴게소에서 급하게 물었던 그분과 그 차를 삼화고속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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