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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놈의 서울답사기

 

제1장

 

제게는 너무도 소중한 사람 중에는 시골 친구들도 들었습니다.

사나흘 전 놈 중 한 놈과 통화했는데 결과론이지만 제가 엉뚱하게 듣는 바람에 친구의 막냇동생이 죽었는데 친구가 죽은 걸로 착각하였답니다.

착각은 착각이고 어제 날짜로 치상 일을 잡았다기에 거기 장소 서울을 찾아 올라갔었답니다.

올라가려고 집을 나선 그날은 그제 오후입니다.

저의 바보 같은 서울방문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촌놈이 서울 가서 바보천치 소리 덜 들으려면 사전공작이 좀 필요하겠지요.

나름대로 인터넷을 뒤졌었지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상경투쟁차 또는 바로 손아래 동생이 입원했던 강남 성모병원을 드나들며 나름 익힌 것이 조금 있습니다.

이른바 지하철 타는 것이 그것인데요.

회사 업무차 미국에 들어갔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네요.

또 국내에 이송해 안치된 병원이 일원동 삼성의료원이랍니다.

전화연락했던 시골친구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라고 일렀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울에 한두 번도 아니고 열댓 번도 넘게 넘나들었을 제 이력이 있는데, 비싼 택시비 물고 싶었겠어요.

거기서부터 아픔(?)이 출발했지만, 집 나서기 전에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답니다.

하여 네이버에서 '삼성의료원'으로 검색하고 이것저것을 뒤적인 끝에 '고속터미널역'에서 '일원역'으로 연결되는 '3호선' 지하철 노선을 확보하였답니다.

기억이 몹시 짧은 제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단은 검색창에서 오른 마우스 누르고 노선도를 한 장 인쇄하였지요.

이것이 소위 저를 목적지로 안내할 '보물지도'였습니다.

오후 세 시반에 이르자 챙겨입은 옷자락에 중요한 물품과 더불어 보물지도를 챙겨 넣고서 아파트 모든 창문을 걸어잠그고 현관문을 밀치고 나섰답니다.

결연한 다짐(?)이 발자국에 들었겠지요.

1층으로 내려가 막 아파트를 나서려는 순간 비가 쏟아집니다.

'아뿔싸! 소나기겠지? 잠깐이면 그칠 테니까 별문제 있겠어?'

안일한 그 생각이 고통의 시험대가 될 줄도 역시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100미터 안팎의 '광주은행 365 창구'를 향해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뛰었었지요.

나름 친구가 떠나는 길 서운치 않게끔 제 마음 다해 필요한 비용을 뽑아내고 창구 문밖을 보니 쏟아지는 비가 그치기는 고사하고 더 세차집니다.

'안 되겠다. 집에 들어가 우산이라도 가져오자!'

맘의 되잡고 쏜살같이 집으로 내뺐지요.

엘리베이터 번호가 우리 집 층수에 멈춰 있네요.

올라와 보니 어머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내 방에 문단속하려고 들어왔다 그런데 어딜 갔다 오는 거냐?'

자초지종 설명하고 비 그치면 다시 내려갈 거라며 머리며 옷에 묻은 비를 수건으로 묻혀 냈었지요.

문지르면 옷 속으로 파고들기에 눌러서 묻혀 냈는데 일부는 벌써 흥건합니다.

그러자 저러자 잠깐 사이에 비가 그쳤습니다.

곧바로 나가려다 우산을 생각했지요.

쓸만한 우산이라고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데 그거 가져갈 순 없고…

궁리 중에 부채를 생각했었지요.

그 얘길 꺼내자 어머님께서 잊어버려도 좋으니 가져가라며 접이 부채를 어디서 꺼내옵니다.

그건 비 맞으면 금방 녹아서 흘러내릴 게 뻔하기에 마다했지요.

마침 탁자 한쪽에 널찍한 플라스틱 부채가 보이네요.

됐다 싶어 얼른 치켜들고 어머님께 인사 여쭙고 곧바로 나왔답니다.

100미터 남짓의 버스승강장까지 부리나케 걸었더니 온몸이 후덥지근했지요.

비 맞은 옷 걸치고 다시 비 내리기 전에 도착하려고 냅다 건 것인데 플라스틱 부채 그거 정말 요긴하더군요.

시내버스를 타고 인터넷으로 확인한 그대로 광천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들리고 더 재빠르고 자 누군가에 물어 매표창구에 가서 표 끊고 서울 가는 고속버스에 오르기까지 일사천리로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확히 오후 다섯 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이 실렸던 거였답니다.

- 간만에 서울로 가는 설렘 -

- 죽은 친구의 주검을 보고 오겠다는 비장함 -

그것들이 뒤섞이는 묘한 감정이 제 가슴에 함께 탔었습니다.

나는 지금 친구를 보러 갑니다.

영안실에 누었다는 친구를 보러 갑니다.

- 고속버스에서 -

 

어디쯤 오르다가 맘속이 다소 안정되었던지 하늘을 우러렀지요.

그때 참으로 희한한 광경과 만났습니다.

머리 위 몇 미터인지 몇백 미터인지를 진하게 구름이 둘러쳤는데 거기를 뚫고 저 멀리 그 위쪽으로 하얀 그야말로 새하얀 뭉게구름 닮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거 있죠.

'와~ 멋지다!'

그것이 한순간 잠깐 비쳤던 게 아니고 5분일지 10일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다른 상념에 빠지기 전까지 계속하여 올라가는 버스와 함께 했었답니다.

오래전에 봤던 3D 영상! 그것과 일치했었지요.

그 있잖아요?

'매직아이'에서 화면에 집중하면 마치 투명한 물속에 영상이 잠긴 듯한 모양을 볼 수 있었던 그 깊이 있는 영상 그것 말입니다.

 

 

제2장

 

아무튼, 이런저런 상념이 사라지고 마침내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는 곧바로 공황상태가 돼버리는 겁니다.

예전에 드나들던 서울의 터미널이 아니었거든요.

'강남시외버스터미널' 그것은 어딜 가고 전혀 낯선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걸어나온 느낌이 든 겁니다.

'나 류중근이다. 집중하자!'

멍한 상태로 서 있기가 뭐해서 무작정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곧 '3호선 지하철'을 떠올리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보려고 했었지요.

참 그 동네 괴팍한 동네더군요.

나중에 저를 데리러온 친구한테 털었더니 '응. 서울은 원래 그래!'가 돌아왔었지요.

대다수가 제 물음에 짐승 대하듯 얼른 피해갔지만, 극히 일부는 과하다시피 친절을 베풀기도 했답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거에요.

제멋대로 내버려둔 얼굴 꾸밈새며 거기다가 비틀비틀 묘하게 걷는 제 몰골이 혐오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실제로 혐오스러웠을 겁니다.

터미널에서 30여 분이 지나 마침내 지하철에 내려섰지요.

'뭐야? 지하철이 이게 뭐야!'

마지막 지하철 탔었던 게 93~4년쯤 됐을 테니까 채 10년도 안 됐는데 여기 또한 낯선 행성입니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교통카드로는 900원이고 일반카드로는 천원이었었는데 표 끊는 곳도 안 보이고 거기다가 더 황당한 것은 지하철 철로가 없는 겁니다.

미치고 팔딱 뛰겠더라고요.

어떻게 역무원 만나서 물었더니 저쪽 보이는 어디로 가서 표를 끊어 오라고 합니다.

거기 가니까 또 무슨 커피도 아닌 것이 일회용 승차권이 있네요.

광주에서 떠나기 전 맘먹기를 세 장을 끊어서 두 장은 거기서 써먹고 한 장은 기념으로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그것을 보자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답니다.

'일회용이라니까 그거라도 두 장을 뽑자!'

2천 원을 넣었지요.

낱장으로 넣으라네요.

어라? 한 장만 내주고는 밑으로 500원짜리가 또르르 떨어집니다.

'이건 또 뭐야?'

역무원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 중에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3호선 타려면 저기 입구로 가라는 이야기뿐이었어요.

그 표라는 게 또 어디 넣는 것도 아니고 시내버스처럼 들고서 센서에 대는 거였는데 거기서도 삐삐 소리와 함께 덜컥덜컥 몇 번이고 가로막이 가로막았었지요.

그것도 마침내 고놈 대고 소리 나지 않을 때 지나간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3호선 안에서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서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가 안절부절못하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탔다면 아홉 정거장째가 일원역이라는 걸 인터넷으로 뽑아왔지만, 서너 번 지날 때까지만 그것을 세어 나가다가 그 뒤로는 접었습니다.

우선 열차가 멈췄을 때 차창 너머로 보이는 정차역 이름이나 앞뒤에 써진 이름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몹시 화나고 기분 상한 탓이었지요.

그래서 대안으로 옆자리 승객에게 일원역에 대한 도움을 얻었지요.

고개 숙여서 그 고마움 전하고서 마침내 그토록 기대했던 일원역에서 내렸습니다.

역에서 나올 때도 어김없이 촌놈 티가 확 드러납니다.

그놈의 일회용 카드 아무리 들이대도 문이 열리지 않지 뭐에요.

영어로 에러만 내뿜으며 삑삑거립니다.

'이런 제기랄 뭐 이런 뭣 같은 새끼가 다 있나!'

발 뻗고 손 뻗어서 그냥 그 가로막을 넘어와 버렸습니다.

그렇게 바깥까지 나오긴 했는데 눈앞에 있음 직한 '삼성의료원'은 어디에도 안 보이는 겁니다.

'터미널에서도 택시 타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택시 탄다는 건 말도 안돼! 입이 없냐 귀가 없냐!'

터미널에서 지하철 찾으며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묻기로 작정했었지요.

터미널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훨씬 부드럽게 잘도 가리켜 줍니다.

그러나 가리켜 준 곳을 아무리 걸어도 '삼성의료원'이란 작달막한 화살표 간판만 보였지 정문이 나타나지 않는 거에요.

눈앞에 두고도 못 찾는 지금은 아까 침에 지하철에서 느꼈던 미치고 팔딱 뛴다는 건 이곳에 비하면 가벼운 엄살에 불과했지요.

얼마큼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헤매다가 드디어 영문으로 '게이트 1'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맞이했습니다.

'앗싸! 1번 게이트니까 정문이겠구나!'

들어가서 봤더니 정문은 고사하고 이게 웬걸 자전거만 가득합니다.

다시 말해 거기가 자전거 보관소나 된 것 같았습니다.

이쯤에서 제 몸 상태를 뻔히 알기에 맘졸이고 있을 친구들이 확 다가왔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전화를 넣었지요.

위치를 묻기에 다른 건 모르겠고 자전거가 몽땅 있다고 대답했더니 녀석이 지나가는 누군가에 묻는듯한 말투가 들리더니 지금 그 자리에 꼼짝 말고 거기 있으라네요.

5분쯤 지났을까? 녀석이 얼마나 뛰었는지 가쁜 숨 몰아쉬며 눈앞에 다가섭니다.

녀석의 발걸음을 뒤좇으며 한참을 지나니까 그렇게도 찾아 헤맸던 '삼성의료원' 정문도 나왔고요, 장례식장은 거기서도 또 한참을 더 걸었었지요.

저를 찾아 부지런히 내달렸을 친구의 몸도 제 몸도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만날 죽은 친구를 생각하니 파김치 정도에 쓰러져선 안 되었지요.

 

 

제3장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놈이 누웠다는 장례식장에 들어섰습니다.

'이 놈아! 내가 왔다!'

속으로 삭이면서 첫 절을 하고 고개를 들면서 절하기 전 다가서서 보았던 녀석의 영정이 너무도 젊고 예쁜 것이 맘에 걸렸던 게 머리를 때립니다.

그래도 죽었다는데 두 번째 절마저 마치고 거기 상주와도 맞절을 나눕니다.

어머님 아버님이 또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아버지! 엄마! 제가 왔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다냐?'

집에서 어머님에게는 전라도 고흥 성인의 표준말 '아부이, 어무이' 중 '어무이' 쪽 '어메'로 호칭하지만, 걔는 뭐로 불렀을지 몰라 고흥 모두의 표준말 '아부이 어무이'의 일반어 '엄마'로 불렀던 겁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그 상황에서도 제 어머님 안부부터 먼저 묻습니다.

저는 두 분 맘 위로한답시고 죽었다는 친구이름은 꺼내지도 않은 채로 '살다 보니 우리가 이런 더러운 일도 겪고 그러네요 아버지 엄마…'

그렇게 꼴값을 떨고서 나왔었지요.

그리고 친구들 모였을 넓은 휴게실에 들렀더니 서울 일대의 얼굴 알만한 친인척과 또 한쪽 방으론 삼성 직원이 가득합니다.

그 중엔 삼십 년도 훨씬 넘었을 초등학교 다닐 적에나 몇 번 봤음 직한 여자친구도 들었습니다.

집에서 이미 60여 일을 멈추기로 했던 금주선언이 요놈 죽었단 소식에 무너뜨리고 올라온 탓으로 그 자리에 앉자마자 채워넣기 시작했었지요.

어지간히 좀 마셔대라고 친구들이 핀잔 줬지만, 게네들도 제 술버릇을 대충은 꿰기에 내버려 둡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요.

개벽천지 난리가 일었습니다.

그것은 제 맘속에서만 그랬겠지만, 이보다 더 큰 '개벽천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술잔 기울이는 중에 누군가 다가와 제 어깨를 뚝 치는 겁니다.

무심코 돌아보니 거기에 바로 죽었다는 그놈 내 친구 '승호'가 서서 빙긋이 웃는 게 아니겠어요.

소름, 희열, 환희 그 모든 것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엄청난 그 무엇이 그 찰라 제 몸을 섬뜩하게 일렁입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을 다 벗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것이 꿈인지 생신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웃통을 벗어젖히고 아랫도리 바지 혁대를 푸는 순간 녀석이 제 몸을 부둥켜안습니다.

'이놈아, 왜 그래?'

'죽었다는 네 시체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 있는 넌 누구냐?'

그전에 녀석의 손아래 동생에게 간곡하게 부탁한 적 있거든요.

내 올라온 목적이 태우기 전에 기어이 얼굴 한 번 보고파서 올라왔으니까 내 소망 반드시 꼭 가능하게끔 도와달라고 말입니다.

그때도 물론 친구 이름은 꺼내지도 않고서 말이에요.

그런데 동생 말로는 이미 입관해 버렸기에 늦었다고 말했었거든요.

그 이야기 듣고서 제 술잔이 더욱 빨라졌을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죽었다는 친구는 살아있고 대신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사랑스러운 막냇동생이 가고 말았네요.

- 동생아 미안해. 잘 가라

나중에 만나자 -

친구의 부조봉투에는 이렇게 썼었거든요.

- 친구야 사랑해. 잘 가라

나중에 만나자

중근이가 -

 

 

제4장

 

누군가 깨워서 부스스 눈을 떴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들었더군요.

삼성에서 준비했던지 거기서 거기겠지만, 장례위원회에서 준비했던지 바깥으로 나가 개운한 국물에 아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차에 올라 화장장을 찾아갔었지요.

전에 몇 군델 다녀 봤는데 그곳들에서보다 더 넓고 쾌적해 보입니다.

곳곳에 묘한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화장)을 모신 곳입니다.

2009년 5월 29일

수원시 연화장

 

내 죽음을 걱정하며 밤새웠던 그날 새벽 저 아래 봉화마을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바위에 몸을 던지셨습니다.

참 묘한 감회가 버무려졌지요.

그 감회에 잠겨 영구차에서 내려 화로에서 저승사자처럼 불쑥 튀어나와 관 올라오길 기다리는 대차를 마냥 넋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지나고서야 짧은 그 과정에도 예식이 있다는 거 각자 처지에 맞게 치르는 그 예식 가장자리에 볼썽사납게 제가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요.

이미 우리 차례가 지났는지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이 넓은 서울 하늘 아래에 홀로 선 느낌입니다.

침묵마저 삼켜버리는 그 고요한 마당에 그 눈치 없이 여기저기로 전화를 넣어 찾았습니다.

6 번 화로에서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찾아갔더니 좁은 거기 화로 앞에 삼성직원인지 교회단원인지 북새통을 이룹니다.

물론 사방팔방이 울음소리마저 삼켜버린 적막이지만 말입니다.

정확히 화로에 관 올려지고 두 시각이 지나니까 곱상한 도기에 가루 되어 재가 되어 돌아왔었지요.

그러고는 도저히 도심의 도로라고 믿기지 않는 울퉁불퉁 희한한 도로를 지나 마침내 장지에 들어섰습니다.

거기 오고서야 친구네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거기가 아마도 천주교도 들의 장지라도 된 듯 보였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알 길이 없지요.

비석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묘소 몇을 지나 그가 놓일 그 자리에 이르렀지요.

천막처럼 보이는 지붕이 둘려 있습니다.

느닷없이 웬 놈의 비가 떨어집니다.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우두둑 떨어집니다.

그런 찰나 어느새 또 누군가로부터 하얀 비옷이 하나씩 건네집니다.

일본 핵발전소 터졌을 때 방사능비에 안 맞으려면 체형이 우산과는 안 맞겠고 비옷이 적절할 거로 글은 썼지만, 난생처음 걸치는 비옷을 이곳에서 입게 될 줄은 너무도 의외입니다.

똑딱이 단추가 몇 개나 달렸음에도 세찬 비바람엔 그것도 다 막진 못하네요.

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랫도리는 이미 비로 흥건합니다.

비가 내리는 그날 그 순간에 저는 제 몸에서 심각한 이상징후를 발견했습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76년 가을에 아버님 돌아가시곤 실제에서 울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한마디로 제 성질머리 개떡같고 참 괴팍한 냉혈 인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 친구가 죽은 것도 아니란 걸 알아버린 이 마당에 말입니다.

일면 했을지 안 했을지도 모를 어린 동생이 죽었다는 걸 다 알아버린 마당에 말입니다.

죽어 버린 동생의 아내가 머리에 두 손 올리고 유골함 넣은 묘지에 절하려는 순간 말입니다.

제 눈이 미쳐버렸습니다.

쏟아져 내린 것을 감당할 수 없어 고개 돌리는 순간 하마 터며 쓰러질 뻔했습니다.

얼른 주위의 커다란 묘비 닮은 그것 누대를 손 뻗어 짚었지요.

간신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어깨가 꿈틀대는 건 저도 어찌할 수 없었답니다.

텔레비전에서나 소설책에서나 봤음 직한 어깨 들먹이는 걸.

저 자신에게서 인다는 걸 그것도 난생처음 알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애절함에 눈시울이 젖어드네요.

 

 

제5장

 

아~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애초 처음 제게 연락했던 광양 친구가 바로 가는 버스에 오르지 않고 제 걱정이 되었던지 광주 가는 버스 옆자리에 함께 탔었습니다.

어제 거길 찾으면서 얼마나 노곤했던지 저는 내내 줄곧 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얼마쯤 내려왔을까?

거기서 터미널까지 가려면 아마도 10여 킬로미터쯤 남았을 걸요.

제가 사는 지역이 서울 쪽 고속도로에서 광주에 들어와 첫 '요금소' 부근이거든요.

거기 어디에 임시 정차 장이 있다는 걸 요 몇 년 위쪽(서울 부근)에 몇 번 들락거리며 본 적이 있었지요.

터미널까지 가서 돌아오려면 가는 시간 오는 시간 합해서 아무리 일사천리로 연결돼도 한 시간 반 남짓은 걸릴 게 뻔하지요.

맘속으로 늘 거기 임시 정차 장에 내려보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문득 잠에서 깼는데 차가 멈춰 있고 몇 사람이 내리는 겁니다.

'엉? 여기가 어디야?'

'으응? 광주 거의 다 왔어…'

'어? 그러면 나 여기 내려야 되는데… 기사님 잠깐만요. 용환아, 잘 가!'

'응 그래!'

출발하려는 차를 멈춰 세우고는 후다닥 내렸었지요.

'여기가 어디쯤일까?'

후다닥 앞서 내린 누군가(남자)를 쫓아 달려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청각장애인인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묵묵부답 말없이 그냥 가버립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인가?'

마침 젊은 아낙이 그 자리에서 차에서 내린 나이 든 누군가를 웃으며 맞이하네요.

나이 드신 아주머님이 대답하긴 하는데 자기도 여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투명인간은 아닐세!'

내려선 고속도로에서 아주 비좁은 길을 따라 4~5십 미터를 내려가니 거기 승용차가 몇 대 서 있습니다.

아마도 거긴 차를 가진 분이나 그 길 아는 근처에 사는 분에게나 매우 정차 장이지 제게는 무용지물 같은 곳이었지요.

마침 집에 있는 막냇동생으로부터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동생과 통화는 했는데 당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요.

류동신 8/12 [금] 7:25P - 00:00:25

무작정 걸었습니다.

적어도 거꾸로 가지 않으려고 고속도로와 순 반향으로 말입니다.

얼마큼 걸으니까 마침 큰 길이 나오더라고요.

방금 그 길에서 나왔으니까 그 길도 고속도로는 아닐 거로 짐작은 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습니다.

잔뜩 빠르게 달리는 그 갓길을 걸으려니까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달리 택할 방법이 없잖아요?

얼마쯤 걸었을까? 제 곁을 오토바이가 스치는 겁니다.

'앗싸 됐다!'

오토바이가 지난다면 거기가 고속도로는 아닐 테고 도시 고속도로쯤 되지 않겠어요?

힘은 들었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것만으로도 희망의 불빛이 되었습니다.

얼마큼 지나니까 도로 오른쪽으로 여트막하게 샛길이 보입니다.

'혹시 민가로 통하는 지름길일지도 몰라'

주저하지 않고 들어섰지요.

몇 발자국 떼지도 않았는데 그 길은 사람 다니는 길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길은 보이지 않고 그래도 사력을 다해 수풀 무성한 아니 잡목 무성한 그 길을 더듬어 나갔었지요.

자세히 보니 거기는 버려진 과수원쯤으로 보이네요.

사방에 발그스레하게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으니까 말입니다.

어느 순간 도저히 더 나아갈 순 없겠더라고요.

어지간한 장애물이야 애초에 산중 놈(40년 전)이라서 피해갈 수 있다지만, 지나는 잡목(과수) 사이로 확 다가와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곳이 설혹 버려진 과수원이라 할지라도 나무를 꺾고서 휘두르며 지나칠 수는 없었으니까요.

'안 되겠다. 돌아가자!'

너무 억울합니다.

해준 것도 없는데 괜히 억울합니다.

복숭아 하나를 잡고서 확 돌려서 뗐답니다.

- 주인장님 죄송합니다. -

다시 거꾸로 맨 처음 들어섰던 그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처음에 얼굴이 걷어낸 탓인지 거미줄 하나 걸치지 않았지요.

도로엔 차가 달리니까 훤했지만, 날이 꽤 어둡습니다.

처음처럼 다시 순방향으로 계속하여 걸었지요.

그러던 차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납니다.

'아~ 살았다. 개 짖는 소리. 민가가 근처에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한참을 걸었는데 도로 오른쪽에 뭔가가 하얗게 보입니다.

'시끄러워 이놈아, 나도 죽겠다!'

점차로 가까이 가보니 정작 개는 왼쪽의 무슨 창고 같은 곳에서 나와 짖고 있었네요.

제 귀가 소리의 방향을 구별하지 못하니 여기서도 그 진가를 보였습니다.

5분여쯤 더 걸었을까?

점퍼도 끌어내리고 넥타이도 풀어헤치고 제 모습이 말이 아닙니다.

비틀거리는 제 뒤태는 또 어땠을까요?

마침 승강장처럼 생긴 것이 들어왔는데 거기 또 주민들 서넛이 앉아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안녕하세요? 여기 시내버스가 몇 번이 다녀요?'

'시내버스? 여기는 시내버스는 없고 시외버스만 서지… 시내버스 타려면 저 아래로 쭉 가보면 있어.'

'아이고 고맙습니다. 제가 미친놈처럼 보이지요? 너무 더워서요'

그런 경험도 없지만, 군대서 행군하다가 낙오한 놈이 민간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거기 시민이 시민으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민간인으로 느껴졌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고 또 거기가 광주시와 맞닿은 시내버스도 다닌다고 전하잖아요.

그분들 말씀대로 쭉 걸었더니 민간이(?) 천지입니다.

거기다가 슈퍼마켓이라고 쓰인 상점이며 하다못해 택시도 보입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동생과 몇 번이나 통화하면서 녀석은 꼭 택시 타고 오라고 했거든요.

류동신 8/12 [금] 7:59P - 00:01:01

여기까지 온 마당에 택시 탈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누군가에 제가 사는 아파트를 물었더니 어디 어디를 지나 쭉 가면 짐작이 갈 거라는 이야기도 들은 마당이니 말입니다.

그로부터 20여 분이 흐르고 마침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고속버스에서 잠결에 얼떨결에 헤지고만 친구에게 통화하여 제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전했답니다.

김용환 8/12 [금] 8:22P - 00:00:55

 

 

제6장

 

온몸이 흠뻑 절어서 들어왔는데 어머님이며 남동생이 반가이 맞습니다.

그때 친구 죽었단 소리 듣고 쓰러지셨던 어머님께 가장 먼저 그것은 아니고 걔 막냇동생이 죽어서 돌아왔다고 애초에 잘못 전한 소식을 정정했지요.

'어머머 그 막둥이가 얼마나 야물고 예뻤었는데 세상에…'

그리고 어머님 건강을 더 걱정하셨던 친구의 부모님 말씀도 전합니다.

도로에 나와서 기진맥진해 있었는데 거기 과수 밭에서 뗀 복숭아 하나가 큰 힘이 돼 주더라는 황당한 이야기와 더불어서 말입니다.

잠시 그대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 던졌습니다.

얼마나 썼는지 거창한 우산(부채) 말고 잃어버린 것은 또 없는지 점검해 가면서 말입니다.

훌훌 벗고 샤워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깊숙한 속옷을 걸친 채 제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오메메 이게 뭐다냐?'

'풍뎅이요. 엄마'

남동생이 웃으면서 그럽니다.

'그거 버리지 마시오 잉?'

아파트 창문 열고 나무 무성한 저 아래 잔디 쪽에 놓아주면 살아날 테니까 어지간해선 벌레(모기는 빼고)라도 죽이지 않거든요.

제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현관문을 열더니 어디론가 가지고 나가시네요.

제가 버려진 과수원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 잡초 무성한 곳을 헤맬 때 놈이 어느새 제 옷에 붙었던 모양입니다.

 

 

제7장

 

그것이 어젯밤 일인데 얼마나 뻐근했던지 자고 나니까 온몸이 쑤셔왔습니다.

안 되겠기에 가장 먼저는 침대에 엎드려 팔굽혀 펴기 몇 개를 합니다.

다시 그대로 누워 침대 밑으로 발가락 집어넣고 부드러운 걸레 위쪽으로 받쳐서 윗몸 일으키기 서른 개를 채웠습니다.

윗몸일으키기 제 숫자 채웠으니 다시 뒤집혀서 바닥에 손 집고서 팔굽혀 펴기 열 개를 했습니다.

위아래가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게 제 개똥철학입니다.

그 개똥철학 스트레칭 한 셈입니다.

이걸로 '촌놈의 서울방문기'를 마칠게요.

실은 좀 더 길게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쓰였었는데, 그리고 동생의 마누라 이야길 꺼냈을 즘엔 눈시울도 우두둑했었는데 쓰다가 오자 고치려고 백스페이스 바며 취소키 잘못 눌러져 모두 날아가 버렸었거든요.

그래도 기왕에 쓰기로 했으니까 기억을 더듬어 다시 썼습니다.

황당하고 영양가 없는 촌놈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