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한낮 소리·풍경소리
80년대 후반입니다!
그 당시 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에서 '노동해방 투쟁선봉대'라는 이름의 '낮은 단계 전투조직'을 꾸렸어요.
그즈음에서 저는 노동조합 내에서도 일반 조합원에 불과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그것보다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어가서 노닥거리는 그것이 일상이었고, 밖에 나와서는 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실에 뒹굴다가 집에 가곤 했답니다.
왜냐하면 거기 사무실 자리가 제가 그 회사에 입사하기 전전 직장이 있었던 자리기에 아무래도 맘이 편했죠.
문제는 어쩌다가 그놈의 것 '선봉대'라는 놈의 '우두머리직'을 맡게 되면서 참으로 곤란해졌죠.
왜냐하면 우리 대원 대다수가 지역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그 우두머리였든지, 임원 내지는 가장 열성적으로 노동조합 일에 앞장섰던 열성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 6일 근무가 일상이었던 그 시절에 중소기업에서는 일요일처럼 휴무일이 분명한데도 계속해서 일 시켰던 때가 흔했던 시절이라서 토요일마다 시간 내고 나와서 모임에 참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녔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모임 때마다 빠지는 대원을 불러내곤 했는데 그게 말 같이 쉬운 일이 아녔지요.
대원 중에는 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이 아닌 업체(가령 동네 공장(마을 공장)이나 한국노총 산하 업체에 다니는 대원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래도 꼬박꼬박 될 수 있으면 참여했는데 토요일마다 참여하지 못한 여성 대원에게 전화하기는 진짜 입이 있어도 그 입이 너무나도 무거웠답니다.
전화를 넣고서 거기 주인집 아주머니가 주로 받았는데 전화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했을까요?
- 통신 보안이 철칙이었던 그 시절에 -
- 경찰이 눈이 벌게서 주시하던 그 시절에 -
가타부타 설명 안 하고 그냥 솔직히 불었지요.
'광주 지역 노동해방투쟁선봉대 대장입니다. 혹시 그 댁에 응응 씨 계시면 좀 부탁합니다. 오늘 긴급한 회의가 있어서요.'
선봉대장이란 말을 꺼내면서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릅니다.
공장에서도 잘 쓰지 않는 그 이름 / 집에서는 더욱 쓰지 않기에 어떨 때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오돌오돌 떨었던 그 이름^
이부영·장기표·이재오 등이 주도했던 '민중의 당'에도 아주 잠깐 머뭇거리다가 발 빼고 나중엔 '진보정당 추진위'에도 조금 얼쩡댔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내밀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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