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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랬지~!~

고구마 두세 알이 끼니 하나를 책임졌던 그 시절에-

틈만 나면 끊임없이 동생들 업어야 했지.

우리 집 맏이였던 그때 동생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내 자유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아침으로 눈만 뜨면 허리에 한 뼘 넓이의 띠를 두르고 그걸로 동생 중 가장 어린놈 업고서 외양간으로 가서 염소 목줄에서 길게 늘어진 견인 줄 풀고서 산으로 갔지.

집 근처엔 우리 집 산이 없었기에 마땅히 매 놓을 데는 없었고 그 대부분을 집에서 2, 3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공동묘지'에 갔다가 맸잖아.

공동묘지에 특별히 먹일 건 없고 우리가 '동백 살'로 불렀던 '개 동백'이 보이면 그 근처에 매어 놓고서 내려와서는 아기도 내려놓고 학교(초등학교)에 갔었어.

학교를 오가는 그 길은 얼추 1.5에서 2km쯤 됐을 텐데 그 길의 절반이 산길(신작로)이지.

그 산에는 도토리가 엄청나게 많았기에 내 친구들 대부분은 그 등하굣길에서 도토리로 구슬치기했거든.

나는 얼른 집에 와서 동생도 돌봐야 하고 염소도 살펴야 했으니까, 길거리에서 그렇게 한가로이 노닥거릴 순 없었거든.

내가 업고 다녔던 내 동생 너무나도 자주 울었어.

또 쉬지 않고 크게 울었어!

지금 생각하면 배고파서 그랬겠지.

'학교 종이 땡땡땡-'
'송아지/송아지 얼룩송아지-'

아기 울 때마다 내가 아는 노래 나도 얼마나 처불렀는지 몰라!

나도 배고팠지만, 울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지.

장남이니까~ / 집안의 기둥이니까!

그렇게 저렇게 시간이 흘러서 조용해지면 애가 잠들었나 보다~

내 허리도 그렇고 엉덩이도 축축해졌지.

애가 쌌나 보구나~

그 동생이 자라고 자라서 지금은 우리 집에 어떤 기둥이 됐다!

걔는 우리 집안에서도 매우 귀한 딸내미다.

오늘은 갑자기 그 옛날 계를 업고서 하얀 허리띠 찼던 그때가 떠오르더라!

이러다가도 갑자기 우리 어머니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러다가 또 어떨 때는 맨정신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거든.

'여기가 어딜까? 내가 지금 왜 나왔지? 화장실이 어디가 있냐?'

우리 어머니 어떨 땐 같이 사는 나도 못 알아본다.

최근 들어선 어두운 귀가 더 멀어져서 커다랗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다가도 더러는 내가 하는 말에 푸시시 웃기도 하거든-

내가 그 재미로 살지.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