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쩡한 가스레인지 버리고 하마터면 새 걸로 살뻔한 이야기 ♬
요즘 날씨가 궂어서 그랬을까요?
며칠 전부터 우리 집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가스레인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위쪽으로는 크고 작은 버너들이 세 개가 달렸고 몸통에는 생선 같은 걸 구울 수도 있는 그릴이 들어간 그런 레인지입니다.
모두 안 되는 건 아니고 점화 손잡이를 돌려보면 가장 작은놈 버너에만 불꽃이 강하게 튀기고 나머지는 희미하게 튀길 때도 있고 그냥 반응이 없을 때가 잦더라고요.
밥을 짓거나 국물을 만들 땐 그거 작은 버너로는 어림 반푼도 없었지요.
그래서 라이터로 붙이다가 그것이 위험하기에 나무젓가락으로 불쏘시개 삼아서 불씨를 옮겨 붙이곤 했었답니다.
오늘 이것이 고쳐졌다고 느꼈을 순간을 뺀 이틀가량을 말입니다.
점화에 필요한 건전지를 바꿔도 보고 들어내서 청소하는 등 별짓을 다 했건만 끈적거리는 도선 부위를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전 탓에 점화 장치가 작동을 멈춘 것 같은데 그것을 해결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적어도 오늘 낮이 될 때까진 말입니다.
그런데 방전을 해결하는 방법이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었지 뭡니까.
그 방법을 알아낸 것도 너무도 황당한 사연에서 시작되었지요.
그 일이 있었기 한참 전인 아침에 어머님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음식이고 가공이 덜 된 음식을 좋아합니다.
이를테면 과일을 씻지 않고 그냥 살짝 닦아서 먹는다든지, 양배추나 갓 등 조금이라도 거친 채소를 가능한 한 열 가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오늘 아침엔 제가 밥을 지으려고 압력솥을 막 닫으려는 순간 어머님께서 태클을 거시었지요.
왜냐면 감자를 깎고 계셨는데 그걸 밥솥에 넣어 밥과 함께 삶으시려고 그러셨지요.
결국, 어머님 뜻대로 그렇게 밥은 지었지만, 어머님께 전 그걸 안 먹고 껍질이 붙은 채로 조리해 먹겠다고 약간의 실랑이 끈에 선언했었거든요.
실은 그거 어머님께서 자신이 잡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저희한테 먹이려고 그랬으니까 더욱 제 식성과 어긋나는 행동이었지요.
결국, 어머님은 경로당으로 나가셨고 저 홀로 남았었는데 낮에 문득 어머님께 선언했던 그것이 떠올랐답니다.
그래서 부엌으로 나가서 일단 그래도 알이 좀 굵직한 놈으로 감자 네 개를 고르고서 흙이 묻은 곳을 대충 씻어냈지요.
처음엔 아무런 양념도 없이 그대로 찌려고 맘먹었는데 가스레인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걸 그때쯤에 깨달았지요.
어제도 모두 들어내고서 살폈는데 오늘도 똑같이 조심스럽게 들어내 걸상 위에 올리고 여기저기를 훑어봤답니다.
역시나 안 되겠더라고요.
다시 원상으로 복원하고서 난데없이 컴퓨터로 와서 쇼핑몰 한 군데와 가격비교사이트를 열었습니다.
더는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으니 가장 저렴한 걸로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3구에 그릴이 붙은 걸 고르니 가격 대가 장난이 아니네요.
그래도 가장 저렴하면서도 괜찮아 보이는 걸로 찍고서 즐겨찾기에 넣어 두었지요.
그러던 차 어머님께서 잠깐 들어오셨지요.
제가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나무젓가락으로 붙이면 되는데 그 많은 돈을 왜 낭비할 생각이냐며 야단입니다.
물론 저 홀로 쓴다면 그거로도 충분하겠지만, 연로하신 어머님한테는 젓가락으로 불씨 옮긴다는 게 엄청난 위험요소거든요.
더군다나 어디서 들었는지 건전지 이야기며 전기 오븐이야기를 자꾸만 하시는 겁니다.
제가 그거 오븐만큼은 강력하게 저지하고 만류하지요.
어머님에게 말씀드리며 저지하길 보통은 이런 식의 이야기였었지요.
예전에 시골에서 김(해태) 하실 때 생김을 분쇄하는 기계를 처음엔 인간의 노동력(팔심)에 의지해 돌렸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전기가 들어오니까 한 집 두 집 모터 힘을 빌려 기계를 돌렸는데 우리 집에서도 어머님 홀몸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기에 부득이하게 모터를 달았었지요.
그리하니까 작업속도와 작업량에서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늘었습니다.
그 반면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김 가공하는 겨울철엔 다른 철에 비해 월등하게 전기세를 많이 내야 했었답니다.
어머님께 지난날의 그때를 상기해 보라며 그때는 그래도 김이라도 해서 충당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내 편하자고 그 큰 비용을 대야 하겠는가 그거였습니다.
결국, 오늘도 어머님 더는 그 얘기 꺼내지 않고 내려가셨습니다.
어머님께서 나가시자 '어느 세월에 삶아 먹나? 그냥 그릴에서 구워 먹자!' 곧바로 맘이 돌변하여 도마 위에 올리고서 감자 하나를 네 조각으로 내니 사사 십육 열여섯 조각이 석쇠 위로 나란히 누웠습니다.
그리고 불을 붙였지요.
그러고 보니까 위쪽의 버너에는 불이 잘 안 붙었어도 아래의 그릴은 멀쩡했었나 봅니다.
문제는 생전 그거 그릴 쓸 일이 거의 없기에 그거 문짝을 닫아놓고 구워야 옳을지 열어놔야 옳을지 판단이 안 서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컴퓨터에 와서 그 요령을 찾다가 갑자기 어머님 말씀이 떠올랐지요.
'그 비싼 걸 살 필요가 있겠느냐!'
그래서 다시 이번엔 3구를 포기하고 거기에 그릴도 포기하고서 오로지 버너만 둘 있는 2구짜리로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밖(부엌)에선 문이 열린 채 그릴에 감자가 구워지고 있을 테고 하니 맘은 맘대로 급하고 몸은 몸대로 급했지요.
2구짜리에서 찾은 쓸만한 놈의 가격이 이십만 원 안짝이네요.
그렇게 부엌과 안방의 컴퓨터를 오가는 사이 감자의 일부가 타기 시작하네요.
하는 수 없이 꺼 버렸지요.
그런 중에 어디를 잘못 만졌는지 손가락이 따끔거리네요.
인제 중요한 건 손가락에 화상 입지 않게끔 틈나는 대로 찬물에 적시는 일이 더 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쓸만한 놈을 사야겠기에 사이트에서 봤던 것을 정리하는 것도 잊어버려선 안 되는 거였습니다.
어영부영 삼사십 분쯤 지났을 겁니다.
그때쯤엔 가스레인지가 식었을 거로 짐작하고서 슬쩍 손을 대 보았지요.
그릴에서 고구마를 꺼내 국그릇에 담으면서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가 봤습니다.
어떤 것은 타버린 듯했지만 실제로 아주 타버린 건 아니고 겉만 꺼멓게 그을렸네요.
반면에 하얀 놈들은 사근사근 '사십일_고구마'가 밑이 탐 불 때 수풀에 문지르고서 씹었던 것처럼 아주 고소하고 시원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심코 문제아 1번지인 가장 큰 버너의 점화 손잡이를 돌려봤습니다.
'따 다다 딱!'
'우와~ 이런 난리가 있습니까?'
글쎄 거기서 불꽃이 타닥타닥 튀는 거 있죠?
아마도 감자 굽느라고 '그릴'을 돌렸을 때 점화선로에 붙어서 방전을 시켰던 끈끈한 점액질 상당량이 말랐던 가 봅니다.
그랬기에 인제는 거기 세 놈 중에서 가장 강한 빛과 소리로 그것이 튀었습니다.
방금 정말 완전히 고쳐졌는지 확인하려고 '우와~'까지 써 놓고는 부엌에 다녀왔습니다.
기대와 긴장 속에 문제의 그놈 점화 손잡이를 돌렸는데 반응이 미지근합니다.
'뭐야 이거? 다 글러 버린 거 아니야!'
재차 몇 번을 더 돌리니까 불꽃이 튀기는 하는데 낮에처럼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습니다.
가스의 밸브를 열고서 점화 손잡이 두 번째 돌리니 불이 켜지긴 켜지네요.
어젯밤 어머님 들어오셨을 때 인제 다 고쳤다고 미리부터 너스레까지 떨었는데 이 무슨 창피할 일인가요?
아무튼, 방전 탓에 점화가 안 되었다면 안에 그릴이 있다면 그것이 방전을 완화하여 점화 손잡이에 큰 힘이 돼주기도 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오늘의 경험이 제게 전해준 교훈임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좀 전에 버너에 불을 붙여 버렸으니 그것이 완전히 식었을 때쯤에 버너를 다시 한 번 켜볼 생각입니다.
그때 가서도 달랑 두 번으로 점화가 이루어졌다면 오늘의 제 실험이 완전히 성공한 것이고요, 두 번을 넘어서거나 그릴을 켜고서 그 영향으로 점화가 이뤄졌다면 절반의 성공이라 하겠습니다.
버너에 불꽃도 없고 그릴이 켜졌어도 점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는 절대로 상상도 하기 싫은 최악이라고 고백하면서 물러갑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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