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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때마다 한발씩 늦어서 깨달을까?

 

실은 며칠 전부터 부엌칼 좀 갈아둬야겠다는 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었던 목욕 의자가 삭고 낡아서 부스러지고 하여 내친김에(어머님 손빨래하실 때 앉는 의자를 포함하여) 두 개를 커다란 슈퍼에 들러 사다 놓고 그랬었거든요.

오늘 낮에 문득 지금이 칼 갈기 딱 좋은 때라고 여겨졌습니다.

무턱대고 부엌으로 가서 칼꽂이가 붙은 싱크대 여는 걸로 시작되었습니다.

1. 부엌에는 과도 두 개를 포함해서 다섯 자루의 칼이 있습니다.

 

2. 어제 사온 목욕 의자와 숫돌 그리고 어제 아파트 분리 쓰레기장에서 똑딱거리며 만든 숫돌받침을 수돗물 나오는 베란다 바로 앞 부엌 쪽에 꺼내놓았지요.

 

3. 그리고 칼 갈 때 쓸 냉각수통으로 바가지를 쓸까 생각했는데 그놈 옆구리가 벌어졌네요.

하는 수 없이 찬물 부어 얼어놓은 세라믹(?) 냄비를 냉각수통으로 결정했지요.

 

4. 촌에서 칼이나 낫 갈아본 분은 다 아시겠지만, 작을수록 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작은 축에 드는 과도부터 갈았지요.

하나를 갈자니까 숫돌받침이 약간 흔들리는 거 같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연장통 들고 나가 톱질하고 쾅쾅쾅 망치질하는 사람은 아마도 저 말고는 없을 거에요.

그것도 잠깐만 시끄럽지 시끄러운 게 길어지면 주민도 분통 터질 거 아니겠어요.

더군다나 상습적으로 그런다면 그 불만 보통이겠습니까?

지레짐작하고서 어제 얼렁뚱땅 만들어 급하게 들어왔던 게 문제가 됐나 봅니다.

인제는 흔들리지 못하게끔 나사못을 네군데나 쳤습니다.

 

5. 그러고는 숫돌이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왼쪽으로는 적당한 못도 하나 박았지요.

 

6. 그랬더니 숫돌을 받침에 올리니 일직선으로 노이지 않고 한쪽으로 약간 기우네요.

오늘은 칼 가는 것이 급하니까 우선 나머지 칼을 간 뒤로 나중에 기회 봐서 잡든지 굳이 잡지 않아도 무방하면 그대로 쓰기로 했었답니다.

 

7. 앗! 나의 실수~

구멍이 숭숭 뚫린 요놈 과도를 갈 때는 꼭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왼손이 칼자루 잡을 땐 오른손이 알아서 적당히 조절하는데 오른손으로 칼자루 잡고 왼손으로 칼등을 누를 땐 왼손이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오른손잡이거든요.

왼손이 칼등을 힘주어 눌러야 제대로 갈리고 또 작업속도에서도 빠르지요.

그 힘주어 누르는 동안 어느새 지문이 있는 손가락이 과도의 구멍 틈새에 끼어 숫돌에 갈리고 만 것입니다.

따끔거리기에 살짝 들어서 보니까 '앗! 나의 실수~'

 

8. 그놈 구멍 뚫린 과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드디어 모두를 갈았습니다.

칼날이 섰는지 무딘지 확인하려면 그거 날이 하늘을 보게끔 들고서 나머지 손의 엄지로 칼날을 스쳐보면 그냥 알 수가 있지요.

감촉이 미끄러우면 아주 무딘 거고요, 걸리기라도 할 듯이 거치면 날이 잘 선 것입니다.

문구점에서 새 면도칼 사서 그렇게 문질러 보면 어떤 느낌인지 그냥 알겠지만, 초보자에겐 그게 보통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칼날과 문지를(칼날에 스칠) 손에 충분히 물을 적시고 해보면 쉽게 가능하거든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인데요, 칼날과 물 사이에 발생하는 양력이나 응력 등등이 작용하여 마찰력을 줄여준 지도 모를 일입니다.

칼 다섯 자루 모두가 갈아졌습니다.

 

※ 양력 - 양력(揚力, lift)은 고체가 유체 속에서 움직일 때 생성되는 기계적인 힘의 일종이다.

※ 응력 - 원자, 분자 또는 이온 사이에 작용하여 고체나 액체 따위의 물체를 이루게 하는 인력(引力)을 통틀어 이르는 말.

 

9. 드디어 칼들의 고향(?) 싱크대의 칼꽂이에 안착했네요.

 

10. 작업을 모두 마쳤는데 숫돌에 냉각수 붓느라고 그랬던지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감겨 있었던 반창고가 너덜너덜해서 볼썽사나웠습니다.

두 군데 모두를 벗겨 내고 깨끗하게 씻었지요.

그 순간에 깨닫습니다.

'이런 멍청이 바보 천치! 애초에 반창고 감고서 일했으면 멀쩡했을 거 아니냐!'

왜 깨달음은 그때마다 한발씩 늦게 찾아오는 걸까요?

억울하지만, 억울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당하기 전에 0.1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세상은 훨씬 많이 좋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겠고요.

 

11. 일은 낮에 했지만, 손가락에 붕대는 이 글쓰기 직전에 감았습니다.

제가 글을 쓰려고 그림을 따는 중에 어머님께서 오셨거든요.

- 네 손가락이 왜 그러냐? -

- 염병하네~ 칼 잘 드는데 뭐 하려고 갈았느냐? -

- 구멍 뚫린 그 칼은 쓰지도 않는다! -

- 그런데 저 톱같이 생긴 저건 또 뭐냐? -

늘 부엌에 계시면서도 어머님은 그 칼의 용도조차 몰랐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톱날이 있는 그 칼 쓸 일은 이 댁에 살면서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올해가 12년째 되는데 그놈의 칼로 소를 잡는지 말을 잡는지 저도 실은 잘 모르겠거든요.

다만, 짐작하여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 소고기나 돼지고기 큰 거 있죠? =

= 그런 거 동강 낼 때 쓰는 칼이에요. =

= 또 김장 김치 큰 거 반 토막 낼 때도 쓰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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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까지도 확신은 없습니다.

내일은 이 나라의 어린이날입니다.

세상의 모든 진성 어린이 여러분 축하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무럭무럭 자라요!

그리고 몸뚱이는 다 컸지만, 어린이만 못하는 나쁜 숙주들!

어서 빨리 정신 차리고 지구에서 떠나 주시기 바랍니다.

멀리 안 나갈게요. 잘 가세요!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