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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기에도 빠듯한 인생 이제는 해갈할 때도 되었건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87~8년 그 시절은 지금에 비하면 저처럼 배운 거 없는 무지렁이들엔 경기가 참 좋았던 거 같습니다.

87년 새해 아침이 밝아오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살던 광주에서는 적당한 자리를 끝내 못 찾고서 눈을 바깥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실력이 모자라 때리지도 못하는 통기타 하나에 속옷이며 실내복(츄리닝) 챙긴 가방 들춰 메고서 시외 터미널로 갔었지요.

가장 먼저는 외항선을 타고 싶었답니다.

먼저는 마산으로 다음으로는 부산으로 갔는데 해운사에서 만나주지도 않고 박박 우겨서 겨우 만났더니 재정보증을 비롯한 서류 스물 몇 가지를 떼어 오라고 합니다.

'에이 몹쓸 사람들~ 오갈 데 없어 막장 인생살이 한 번 해보자고 왔는데 그깟 서류를 어디서 떼겠어? 에잇^ 너희나 잘 먹고 잘살아라!'

그 길로 대구로 가서 공단을 휘젓고 다니다가 3공단에서 용케 터를 잡고 살았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희한하네요.

제 몰골 어디에서 써먹을 곳이 있다고 덜컥 일자릴 주셨으니 거기 사장님도 대단합니다.

공장 동료 대부분은 저보다 연배가 많았지요.

김형, 이형, 박형 그렇게 부르는 것도 전라도 촌놈에게는 몹시 신기했답니다.

제가 아는 대구 사람들 너무도 살갑고 좋았던 기억뿐이네요.

잠자리가 없어 경비실에서 머물다가 나중에는 급여가 나오니까 여관에 달 방을 얻어 놓고 살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광주에 있는 친구와 편지 주고받던 중에 썩 쓸만한 소식이 들었습니다.

대구에서 미처 1년을 덜 채운 시점이거든요.

광주의 모 공장에서 사람 쓴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가보지 않을는지 의향을 물어왔지요.

제가 광주에 있을 때 면접에서 떨어졌던 그 업체더군요.

오기가 작동했지요.

'네가 감히 날 떨어뜨렸지!'

무작정 광주에 와서 보니 친구놈이 대부분의 제 서류를 떼다가 회사에 제출했기에 면접만 보면 끝이더군요.

면접에서부터 일사천리로 쭉 나가서 정식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88년 8월 9일이지요.

 

광주에서 첫 월급을 받아 대구를 다시 찾았습니다.

여관에 밀린 방세, 식당에 식비, 술집에 외상값… 모두를 청산하러 말입니다.

광주에서 만난 그 직장이 애초엔 '김우중'이 이끌던 '대우'와 미국의 '캐리어'가 합작해 만든 종업원 천 명 안팎의 아담한 중소기업이었지요.

지금은 쫄딱 망해서 예전 성수기 때의 십 분지 일이나 남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주저앉은 김우중만큼이나 회사도 주저앉아 다른 곳으로 넘어간 상태고 말입니다.

그림 속 친구들은 회사가 아직은 멀쩡했던 2003년도에 만났던 얼굴들입니다.

입사 15년 차가 되면 나라밖으로 여행 떠나는 이벤트가 있었거든요.

함께 들어갔던 얘들 중 일부입니다.

2003년 그해는 제가 잘린 지 10년 차기에 모두 너무도 반갑더군요.

그도 벌써 8년이나 지났네요.

저기 보이는 면상 중에도 8, 9할은 이미 그만뒀을 거에요.

또 저 개인적으로는 텔레비전 어느 드라마 '사랑과 애증'보다도 더한 애증으로 깊은 골의 여인이 있는가 하면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은 여인도 들었답니다.

 

실은 이거 어느 블로그에 들어갈 때 '아이디'와 '비번'이 자동으로 들어가게끔 'FORM'과 '스크립트'를 넣어 짠 웹 문서의 배경으로 쓰이는 플래시 파일입니다.

블로그에 들어갈 때마다 로그인하기가 귀찮았었는데 그것을 짜서 써오다가 어느 날 수정하면서 문득 옛 면상들이 덜컥 보고 싶어졌거든요.

그런 이유로 이 파일이 만들어졌었는데 오늘은 다른 이유로 올리게 됩니다.

그게 뭐냐면 제로 보드가 있는 사이트의 제로 보드 애칭을 여태까지는 대부분이 '솔잎'이었는데 오늘 '햇살'로 바꿔 버렸죠.

하여 애칭 변경 기념으로 이 파일을 올리는 겁니다.

아무튼, 그 자리에 아직 남았든지 이미 떠났든지 내 사랑하는 친구들…

용기와 도전정신 놓지 말고 끝까지 진군해 나가길 류중근이 응원할게요.

사랑합니다. 힘내십시오!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