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으로 옛날 전기 스위치를 그려본다!
그 처음 스위치는 생각도 잘 안 나지만, 적어도 요즘 거보다는 오래된 예전 스위치를 떠올려 봤다.
내가 태어났던 시골 이야기다.
다니던 초등학교 쪽 마을은 1974년도에 전기가 들어왔다.
우리 마을은 학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우리 마을만 빼고 거기 초등학교를 연고지로 두는 다른 마을 모두는 같은 해부터 전기(문명)를 맛봤었다.
1974년 그해 우리 마을엔 어선을 통해서 북한으로부터 간첩이 내려왔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 마을이 아니고 우리 마을과 면 소재지를 달리하는 옆 마을 사이의 산지로 바다에서 올라온 간첩이 올라갔다.
옆 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거기 공동묘지의 어느 전봇대 곁으로 비트(군대용어)를 파서 처음엔 그곳에 숨었더란다.
여기서 말한 전봇대는 전깃불이 오가는 전기를 전선으로 이어주는 전봇대가 아니고 전화선을 잇는 전신주가 되겠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혼란한 사회상에서 굉장히 유능한 인재 상당수가 북으로 넘어갔음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그 시절 우리 옆 마을 - 우리 어머니 친정 마을 - 에도 대단한 인재가 있었는데 그 양반이 어느 날 북으로 건너갔단다.
그 일로 인해 6.25를 전후로 그 마을에선 한바탕 피비린내가 스쳤었단다.
- 이 진영이 잡으면 이 진영에서 잡아내야 한다고 난리법석이었고, 저 진영에서 잡으면 저 진영에서 또 그 일가친척의 목줄을 죄고 난리가 났었단다. -
어쨌든 그 사건은 훗날에 결국 간첩 남파로 사달이 나고 말았지.
전기가 없으니까 우리 마을에서 난다긴다하는 양반네는 경운기 돌린 축전기로 밤이면 텔레비전 내놨었다.
6, 70여 호 됐던 마을 주민들 모두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양가의 담벼락까지 가득 채운 상태로 텔레비전에 매달렸다.
어른들은 주로 사극에 매달렸고, 우리처럼 어린 조무래기들은 우리 지역 출신의 운동선수였던 '유제두'나 '김일'에 빠졌으며 그보다는 매주 한 번쯤 방영했을 '나시찬의 반공 드라마 전우'에 혼을 내줬었다.
그러다가 76년도에 드디어 우리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왔지.
110볼트 전기였어.
그 전기에 내가 처음으로 덤볐던 건 빵틀 만드는 거였지.
바닷가에 태풍으로 떠내려온 잡동사니 속에서 함석을 찾아 네모로 오리고 그걸 사각 성냥 통의 양옆으로 하나씩 꽂은 뒤 마찬가지로 바닷가에서 주운 전선(전화선)을 두 줄로 뽑아 그 각각의 함석에 묶고는 그것을 최대한 길게 뽑아서 기본적인 빵틀의 구색을 갖췄지.
인제는 밀가루를 조금 덜어내어 그걸 물에 갠 뒤 성냥 통(빵틀)에 채우고 아까 뽑은 두 줄의 전화선을 전기 차단기에서 양 퓨즈가 꽂힌 부위에 갖다 대는 거야.
그러면 굉장히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계량기는 시속 100km보다도 더 빠르게 돌았고 이내 빵틀은 순식간에 불이 났으며 그와 동시에 차단기의 퓨즈가 끊어지는 게 아니고 아예 타버렸어.
그런 상황에서도 내 정신머리는 불이 난 빵틀 속에 빵이 됐을지 그런 게가 궁금하더라!
빵이 되기는커녕 함석에 붙은 밀가루는 까맣게 타버렸고 나머지 반죽은 물기 흥건한 그대로 열기 한 톨도 남지 않더라고!
그 시절은 어디서 퓨즈를 사는지도 몰랐기에 전화선에서 가는 연선 한두 줄을 뽑아 퓨즈 대신 그걸 걸었었어.
그래야 아버지 어머니한테 야단맞지 않을 테니까-
그 뒤로는 빵 같은 건 접어 버리고 다른 걸(철봉 하는 대나무 인간, 자치기, 연, 자세 등등) 주로 만들었지.
하~
.
.
.
오늘은 거기까지는 아니고 광주에 살면서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넘어가던 그 시절의 어떤 대목들이 아주 짧은 조각으로 스치는 거야.
언제 한 번은 이사 들어간 집에서 내 환경에 맞게 전기 가설하다가 감전되어 골로 갈뻔한 적도 있었거든.
그 뒤로는 졸아서 전기 쪽 손댈 때 면장갑이라도 장갑을 끼거나 그도 미덥지 않으면 아예 차단기 내려놓고서 일하곤 했었지.
어쨌든, 여러 생각 중 문득 그 시절에 썼던 스위치 생각이 나서 쇼핑몰 뒤져봤는데 그 시절 스위치-올리고 내리는 스위치는 보이지도 않고 겨우 있다는 게 전력량계가 있는 차단기 스위치가 그 시절 스위치를 닮았기에 그걸 복사하여 그림판에 넣고선 가르고 잘라서 가운데 스위치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상상력을 동원해 그 스위치 만들어 봤지.
아~
.
.
.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난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던 그해 1976년 -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음 - 에 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홀연히 떠났어.
그때로부터 벌써 오십 년째가 돼버렸네.
- 아버지! 솔직히 궁금하네요.
지금 있는 자리(가족 묘원)가 옛날 그때 그 자리(공동묘지)가 더 낳아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지금 매우 힘겹게 지내시는데 한 걸음이라도 좀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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