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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망증으로 잃어버렸던 물건 찾아내면 앗싸 할 줄 알았는데… ◑

 

오늘 이야기가 아니고 한 열흘쯤 전부터 시작한 이야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보다도 한참 앞서서 생긴 일인데 그 시초를 기억해낼 수가 없으니…

 

그러니까 한 열흘쯤 전날입니다.

늘 자전거 열쇠와 함께 같은 자리에 두었던 '자전거 헤드라이트'가 안 보이는 겁니다.

그 자리가 방안이거든요.

'어디로 떨어졌을까? 떨어져서 굴러 버렸을까?'

그 순간부터 한 사흘을 연이어 찾아봤지요.

요즘은 날이 추워서 자전거 탈 일도 거의 없고 또 밤중에 탈 일은 더더욱 없기도 했지만, 다른 볼 일로도 이따금 그것이 필요했거든요.

또 나중을 위해서도 필요했었고요.

그것 찾을 때 맨 처음엔 그저 가볍게 생각했어요.

그러잖아도 건망증이 심한데 틀림없이 부근 어딘가에 있을 걸로 여겼으니까 말입니다.

'찾고 나선 그러겠지… 녀석이 여기에 숨었었군.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크크…'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무작정 찾을 게 아니라 일목요연하게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찾아보자!'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고는 냉정하게 찾으려고 무척 조심스럽고도 세심하게 살폈거든요.

 

1. 이불장, 옷장을 모두 열고서 내부에 든 모든 것(이불이고 옷이고 가릴 것도 없이)을 일일이 뒤져본다.

2. 서랍장, 컴퓨터 책상, 공구함을 모두 개방하고서 안팎을 일일이 살펴본다.

3. 침대 위아래, 이불장, 옷장 위 들여다볼 수 있는 모든 곳을 들여다보고 옮기고 밀쳐서라도 확인한다.

4. 화장실(두 개다), 부엌(냉장고 선반이나 그 주변, 찬장, 싱크대 수납장, 각종 조리기구 등), 신발장을 일일이 열어보고 확인한다.

5. 거실에 놓인 모든 기물(책장, 공구함 수납장 등등), 베란다에 놓인 모든 물건 일일이 열어보거나 들여다보고 확인한다.

 

대충 이 정도면 나오지 않겠는가 하고 틀을 잡고서 연 사흘을 죽자사자 찾았답니다.

그러나 못 찾았어요.

컴퓨터에 앉아서 문득문득 뭔가가 스치면 잽싸게 이미 뒤졌던 곳을 다시 뒤지곤 했었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친구 놈이 멀리 떨어진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과 함께 문병 갈 일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자전거로 들러보고 싶더라고요.

랜턴도 없이 돌아오는 시각이 늦어지면 엄청나게 헤맬 걸 알면서도 기어이 자전거를 끌고 갔어요.

진짜 견딜 수 없을 만치 어렵다면 어쩔 수 없이 랜턴을 새로 사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맘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든 참아보려고 했었답니다.

 

그것 사면서 인터넷으로 알아봤는데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 동네도 자전거 대리점이 두 군데나 있으니까 동네서 사면 그래도 '택배비'라도 빠지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들어간 상점인데 도리어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도 비싼 겁니다.

사기 전에 그것 택배비 이야기까지 이미 꺼내버린 마당이라서 안 살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샀던 마당이니 어디에선가 꼭 찾을 것만 같았던 그거 어지간하면 참기로 했던 겁니다.

 

그날 밤 이야긴데 올 들어 처음 맞는 정월 초이레를 맞이하기 직전입니다.

그러니까 정월 초엿새날 밤이었어요.

이 아파트 이사 온 그 첫 달부터 그랬을 겁니다.

엿샛날 저녁 자정이 오면 틀림없이 '도시 가스계량기'로 가서 거기 눈금이 얼마만큼 올랐는지 검침하고는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가서 거기 검침원이 보게끔 붙여놓은 검침 표에 기록하고서 들어오는 겁니다.

그럴 때 '도시 가스계량기' 눈금이 잘 안 보이기에 늘 그랬습니다.

랜턴이 있을 땐 랜턴을 들었고, 그게 없으면 '라이터'를 켰으며 나중에 '자전거 헤드라이트'가 들어오고부터는 그걸 들고 나갔었거든요.

그 생각을 하니까 적어도 이달 초엿새날까지는 들고 다녔다는 생각이 미치는 겁니다.

그쯤에 이르자 자정이 오면 놓고 말았던 거기가 덜컥 생각날 걸로 기대감도 들더라고요.

그러나 자정을 지나고 한참을 지난 뒤에도 끝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그 정도까지 찾아봤는데도 성과가 없자 자연스럽게 맘이 풀려서 엊그저께 그러니까 지난 8일 그날쯤에는 느긋해지는 겁니다.

꼭 찾아야겠다는 결의도 풀려버렸고 그것 없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던 그 조급함도 이미 날아간 그날입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잊어버린 '자전거 헤드라이트'로부터 오는 압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표현함이 옳을 것입니다.

 

입이 궁금해서 라면이 먹고 싶었지요.

부엌으로 가보니까 제 것(순한 라면)은 이미 바닥나 버리고 동생한테 주려고 사두었던 동생 라면(매운 라면)만 몇 개가 남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동생 거 봉지에서 하나를 꺼내서 생으로 까먹고는 미안한 맘도 들고 또 제 것도 필요하기에 사다 놓으려고 생각했답니다.

 

한집에 살면서 먹을 것 가지고 그 무슨 네것 내것이 따로 있느냐고요?

사실은 그렇거든요.

예전에 멀쩡할 때 같으면 전혀 그럴 필요를 못 느꼈을 텐데 장애를 입은 후로 여러 가지가 변했는데 이것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코가 냄새를 못 맡으니까 그 불편한 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코에 단순히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 머리 전체에 이상이 있는데 그 안에 코와 연결된 기관이 손상되어 그렇겠지만…

걸을 때 평형을 못 잡은 건 기본이고요, 또 하나 아주 중요한데 음식 맛을 모른답니다.

냄새를 못 맡으니까 음식 중에 작은 알갱이로 된 음식(피우진 않지만, 담배 연기나 고춧가루처럼 냄새가 나는 모든 물질로 이뤄진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기도'도 들어가야 할지 '식도'로 들어가야 할지 그 분간을 못 해서 기도로 들어간 예가 허다하거든요.

어떨 땐 물을 마실 때도 그러하지요.

그러면 어떻겠어요?

엄청난 재채기와 함께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사레가 들곤 했지요?

또 막을 새도 없이 뿜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로 저는 될 수 있으면 매운 음식을 덜 먹으려고 애쓴답니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동생과 제 라면이 그래서 다른 거예요.

그럼에도 이따금 저한테 그런 장애가 있다는 걸 깜빡 잊고서 무작정 먹다가 된통 날벼락 맞았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말입니다.

여럿이 있는 공공의 장소에서 그런 실수하는 날이면 정말이지 죽고만 싶더라고요.

 

라면을 사러 가려면 마을에서도 조금 멀리 있는 커다란 마트로 갑니다.

동네 가게를 살리려면 그래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올 구멍도 없는 저로서는 조금이라도 싸고 양 많은 곳을 찾는 그것이 '생존 여행'이 되거든요.

막 나가려는 순간에 어머니께서 부르고 묻더니 사족을 다십니다.

'돈이 되니? 밀가루 하나 사오 거라! 부족하면 내가 줄게.'

 

'괜찮습니다. 제 걸로 될 거예요.'

그러면서 '시장바구니'를 찾았지요.

 

자전거 뒤에 실으려니까 속에 뭐가 있는지는 확인하고서 출발하는 게 당연한 도리겠지요.

손을 넣어보니 면장갑이 잡힙니다.

컴퓨터에 앉아서는 부드러운 장갑 끼고서 타자하지만, 자전거로 바깥을 나돌 때는 늘 면장갑을 끼고 다니니까 그런 순간에 들어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다시 손을 넣고 휘저으니까 뭐가 뭉툭한 게 잡혔습니다.

'이 건 뭐지?'

꺼내는 순간 하마터면 커다랗게 소리칠 뻔했습니다.

너무나도 기뻤답니다.

세상에 거기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전거 전조등'이 나오지 뭡니까?

- 어안이 벙벙해진다는 사실 -

- 기쁨이 너무나 커도 말이 안 나온다는 사실 -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자전거 열쇠가 놓인 자리에 갖다놓고는 그대로 상점으로 달렸답니다.

 

지갑 주머니 탈탈 터니까 나온 돈 모두 합해 만 오천 원이 나옵니다.

제 라면(순한 라면 여섯 개 묶음 두 개)에 밀가루 하나를 보태서 계산대로 나왔는데 돈이 남습니다.

'어! 그러면 밀가룰 하나 더 사도 되겠네요?'

'네 다녀오세요!'

그렇게 해서 밀가룰 하나 더 샀는데 아까 것하고 다른 걸 들었더니 더 비싼 밀가룬가 봅니다.

만 오천 원에서 달랑 칠십 원이 남았습니다.

동생 라면을 사러 간다고 나가긴 했는데 동생 거는 하나도 안 사고 제 것하고 어머니 아니지 우리 가족 모두의 것만 사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건망증으로 잊어버렸다가 나중에 찾게 되면 대번에 그걸 깨닫곤 했었거든요.

그러면서 백중 팔구십은 그랬었지요.

'아이고 이런 밥통 멍청이… 네 여깄을 줄 내 다 알았다!!!'

그러나 이번엔 전혀 안 그랬지요.

큰 마트에 가면서도 또 돌아오면서도 심지어 이틀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게 왜 거기 들어갔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거기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으니 추측하기도 쉽지 않네요.

이 게 '건망증'이 아니라면 필시 '기억상실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따라 붙네요.

그러니까 제가 장애를 입고 병원에 있을 때도 그랬고 나와서도 그랬는데 많은 사람이 찾았음에도 훗날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었거든요.

그때 찾았던 분과 나중에 만나서 인사할 때도 너무도 오랜만에 만날 걸로 착각하여 인사했으니 상대가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바로 그때의 그 기억상실이 '자전거 헤드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저가 여전히 장애인임을 증명해 준 거 같습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그래도 제 몸인데 함께 살겠습니다.

-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어루만져주고… -

- 중근아! 사랑해~ -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