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친구야. 쉬고 싶으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푹 쉬어라. ↕
작년 연말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입니다.
하던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무나도 걱정됐던 친구입니다.
그 마지막 날 천만다행으로 그날이 끝이 아니라 새해에도 한 달쯤 뒤에 끝날 거라는 이야길 들었기에 저도 여유가 생겼지요.
그래서 어제 낮에는 차분히 전화하고서 찾아갔는데 하필이면 녀석이 너무도 피곤해서 잠깐 아들놈한테 맡겨놓고는 집에 들어갔던 시점에 제가 찾아가게 되었네요.
해서 아들놈한테 물었더니 저녁에 들어온다네요.
하여 정말이지 늦은 저녁에 아파트를 나갔답니다.
언제 택시에 오를지도 몰랐기에 몸뚱이를 단단히 조여 묶고서 면장갑도 끼고서 정문 쪽으로 걸어나갔지요.
차도가 아직 2~3십 미터쯤 남았는데 뒤쪽에서 차량 불빛이 강합니다.
비끼려고 돌아보니까 그것이 글쎄 빈 택시지 뭡니까?
'기사님. 하남공단에 3번 도로 입구로 가려거든요. 거기 외환은행 있잖아요? 거리로 가실래요?'
'예! 어서 오십시오!'
자정이 얼마 남지도 않는 늦은 시각이고 거기 공단은 또 외곽이기에 물어본 거였지요.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던지 매우 친절합니다.
하기야 아직 그쪽 동네 살면서 정부지원에 힘입어서 송정리 컴퓨터 학원에 무료로 다녔을 적엔 그랬거든요.
당시엔 제 몸이 버스를 탈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택시로만 다녔어야 했는데 그 당시 '승차거부'했던 택시들을 수도 없이 보았답니다.
대부분이 또 친절하게(?) 거부했던 걸 기억합니다.
'어쩌지요. 하필이면 지금 막 밥 먹으러 들어가는 중인데 말입니다.'
하여튼, 어젯밤엔 친절한 거부가 아닌 친절한 여행이었지요.
우리 서로 고대하고 만나서인지 친구놈도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합니다.
저녁에 기껏 밥 먹고 나갔었는데 녀석한테서 또 빵을 사서 먹기도 하고 놈이 건네는 김밥도 먹었었지요.
낮에는 식빵과 함께 빵을 가져왔는데 그 시간엔 매장을 돌면서도 마땅한 걸 못 찾고 그저 돌기만 하다가 나중엔 라면 한 봉지(5개들이)를 들었네요.
녀석이 제값보다 훨씬 싸게 계산하네요.
마구 화를 냈더니 녀석이 제값으로 치른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덤으로 다른 것을 들고간 제 가방에 마구 꾸역꾸역 더 쑤셔 담습니다.
그것이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 있죠? 바로 그 도시락이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편의점 도시락의 유효기간이 24시간이 미처 안 된다는 걸 말입니다.
집 앞에도 가게인데 제가 괜히 매장 어슬렁대며 뱅뱅 돈 것이나 이따위 후한 선물이나 얻어가려고 온 것도 아니란 걸 녀석도 다 알 겁니다.
'그래. 이거 끝나는 날이 언제니?'
'응. 이달 말에나 끝날 거야?'
'… 그래 그 담에는 어쩌려고 해? 뭐 할 거니?'
'찾아보면 할 것이 아무것도 없겠어? 그냥 쉬고 싶다~'
'흠~ 쉬고 싶다고? 그래 네가 쉬고 싶으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푹 쉬어라'
그러면서 시답잖은 개똥철학을 더 보탰답니다.
'단 한 번뿐인 사람의 인생주기에 휴식기도 들어 있다.' 가령 그런 식의 제 나름 개똥철학을 말입니다.
물론, 녀석의 정체성이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그 휴식으로 말미암아 재충전하여 더욱 강건해지고 삶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제 맘에서 급조된 개똥철학이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경기가 온통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편의점이라고 뾰쪽한 수가 있었겠어요?
더군다나 대한민국 불경기의 원천인 산업공단에 있는 편의점인데 말입니다.
마땅한 대안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는 녀석의 아슬아슬한 내면이 제 손끝으로도 잡일 것 같았습니다.
친구놈이 어서 빨리 활력을 되찾게끔 널브러진 대한민국도 정신 차리고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기지개 활짝 켜서 정신 차리고 친구놈도 불끈불끈 일어나라!!!'
친구놈 얼굴도 봤고 그 속사정도 들었으니 돌아와야 했습니다.
녀석이 택시 불러준다는 걸 제가 한사코 말렸었지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조금 걷다가 택시로 가마고 말렸던 겁니다.
시간을 보니 한시를 막 넘어서네요.
아쉬움이 드는 듯 마는듯했었지만,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면서 헤어졌답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1:02:01)
길 건너 건물 1층의 불빛 환한 저기가 친구놈 가게인데 저곳에서 나왔습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1:02:18)
저 앞쪽 이정표가 보이는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갈 것이에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1:15:16)
꽁꽁 언 보도블록이 싫다고 여기가 차도로 내려갈 만한 처지도 아니고…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1:26:49)
생긴지 얼마 안 된 수완 호수공원의 표지석이 예쁘장합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1:52:46)
야경이 시원하고 참 멋지네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1:57:05)
마치 오붓하게 시골 길 걷는 거처럼 한가하고 조용하네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00:04)
시인이라면 시라도 한 수 읊을 만큼 정겹기도 했었지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02:22)
도로 곁으로 들에는 아직 설 녹아 쌓인 눈도 우아했고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08:28)
그러나, 갑자기 사방이 컴컴해졌지요.
그래도 어스름한 불빛을 쫓아 쭉 걸었답니다.
그 순간 생각해냈습니다.
30여 년쯤 전(1981년 고2 때였던가?) 자전거로 고흥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겪었던 일인데요.
화순에서 광주 사이엔 '너릿재 터널'이란 게 있지요.
지금은 새로 뚫린 것도 있어 왕복 4차선이 되었지만, 당시엔 2차선이었거든요.
너릿재 터널에 들어서서 2~30미터도 채 통과하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사방이 컴컴해졌었거든요.
처음부터 컴컴했던 걸로 기억했었는데 지금 이것을 겪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때도 아마 진입하고서 머지않아 그랬던 걸로 기억이 다잡아집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통제 시스템의 일시적인 오작동에서 비롯됐겠지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21:12)
드디어 제가 사는 첨단고을에 들어섰습니다.
여기서는 아파트까지 길어봐야 1킬로미터 남짓일 겁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28:12)
흐흐… 이정표에 '방송통신대'도 나왔네요.
한때는 걸어서 다녔는데 그 오밤중에 길을 잃고서 무척 헤맸던 기억도 나네요.
하다못해 제 몸으로 아파트 철조망 담을 넘기도 했었거든요.
거의 죽음이었던 통학이었네요.
비록 중간에 멈춰 섰지만, 아쉬움이 참 많았던 학교입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34:02)
십 여년 전 그때 시내버스종점이었고 포장마차 '딱 걸렸어!'가 있었던 큰길에 들어왔는데
그 시절 포장마차 드나들었던 저의 단골 오솔길(아파트 뒤안길)이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하고 이 밤중에 들어서도 괜찮을지 그 호기심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돌아보지도 않고 올라섰지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36:02)
맞아요. 그 옛날 그때도 여기 중간쯤 어디에 벤치가 있었습니다.
앉아보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밤 중에 덜컥 앉았는데 누군가가 제 탓에 무서워서 지나갈 수나 있었겠어요?
새벽엔 누구라도 스치게 되면 헛기침이라도 해서 누그러뜨려 안심시켜서 지나치려고 맘먹었지요.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39:47)
세상에 집 앞이 코앞인데 여기서 또 꽁꽁 언 보도블록을 만나네요.
기왕에 그 험한 길 헤치고서 왔으니 살금살금 걸어서 나갔답니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오전 2:43:53)
네. 드디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친구와 헤어지면서 그랬거든요.
가다가 택시에 오르거든 문자 넌다고 말입니다.
이 사진 박아서 보낸다고 보냈는데 나중에 씻고서 '고맙다는 인사' 보내고서야 알았답니다.
문자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말입니다.
어쩐지 보냈다는 메시지가 뜨지 않더라고요.
아마도 와이파이가 제대로 안 먹혔나 보더라고요.
이것으로서 친구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 맺으렵니다.
어쩌면 이 글은 경기불황 여행기가 되겠습니다.
이 불황에도 해마다 두자릿수로 경기가 좋아지는 나라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러니 대한민국도 어서 빨리 정신 차리고서 똑바로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웃고 친구도 웃으며 우리가 모두 덩달아 덩실덩실 춤추게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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