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방문자 수 → 홈페이지 오늘 방문자 수 → 방문통계 어제 방문자 수 →

 

♣ 아~ 오화탁·개뼈다귀·이만희 그리고 소나기의 소녀 같은 국어 선생님! ♣

 

1, 2회 벗들은 그것 다 알리라.

우리 학교 덜 만들어져서 옆집인 금호고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야 했던 가여운 날이 있었다는 거…

우리 학교라고 올라와선 허구한 날 마당(운동장)에 수레 끌고 다니며 돌멩이 파내랴 모래 실어다 깔랴 절반은 죽었던 그거…

그런 거는 아니었고 그야말로 정상적으로 수업(?)하던 날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화학기계과였거든요.

아래에 1층 기계 실습실에 가서 쇳덩어리 잘라서 줄로 문지르고 별 짓거리 다 하는 실습하는 날이었지요.

어쩐지 갈 맘이 안 들더군요.

깜빡 실습복을 집에서 까먹고 안 가져간 날이었거든요.

'좋은 수가 없을까… 그래 몸이 안 좋다고 그러면 되겠군. 옳지 됐다. 버티는 거야. 흐흐…'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 놈이 달려와서 선생님께서 날 찾는다고 다급하게 소리치더라고요.

그래서 아쉽지만 밑으로 내려갔겠지요.

'너 S끼 이리와! 왜 안 나왔어?'

'머리가 좀 아파서요.'

'그래 머리가 아프다고??? 그래 이리 와봐!!!'

컵을 대가리에 콱 찍더니 마구 돌립니다.

'어째. 아직도 대가리 아프냐?'

'지금은 좀 괜찮은데요.'

선생님도 웃고 아이들은 그냥 뒤집어지더군요.

하필이면 기계실습을 맡은 담당선생님이 제 담임선생님인 '오화탁' 작은 고추가 더 매운 야무진 오화탁 선생님이십니다.

친구야~ 선생님 물 한잔 드려라!

 

 

그해 5·18이라는 아주 희귀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요즘에 와서 많이 순화한 이름을 지녔지만, 당시엔 '5·18 광주사태'라고 불렀었지요.

덤프차에 유리창 다 날아간 시내버스에 두들기며 향토 예비군가 소리치며 휘젓고 다니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한집에 살았던 동급생보다 여섯이나 더 됐던 낫살 지긋한 같은 반의 형님께서 절대 못 나가게 잡았습니다.

아무리 잡아채도 궁금증이 너무도 컸기에 학교까지 나가봤지요.

난생처음입니다.

교무실 유리창에 총구멍이 났는데 글쎄 무라도 된 거처럼 총알이 지난 자국만이 뻥 뚫렸지 주위는 멀쩡한 거 있잖습니까?

그 장면 정말이지 희한하더라고요.

여기저기를 얼쩡대고 있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벼락처럼 울리네요.

'야 Ss끼야. 너 거기서 뭣해? 빨리 안 기가! 이 Ss끼야!'

언제 거기 계셨던지 교무실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소리치는 그분이 바로 개뼈다귀 선생님이셨습니다.

- 컵으로 대가리 치기·대 뿌리로 정교하게 만든 개뼈다귀로 손가락 치기 -

돌이켜보면 순화교육의 대가이시며 고문교육(?)의 아버지이셨던 아름다운 분이셨네요.

친구야~ 여기도 한잔 더 가져와라!

 

 

1학년 때도 그랬는데 세월이 흘러 2학년이 되어서도 교내에 백일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십구 점 구구 퍼센트 까먹었지만, 당시엔 국어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자화자찬합니다.

자음접변, 구개음화, 연음법칙, 격음화, 특히 요즘 방송계의 아나운서들이 너무도 무시해 버리는 경음화…

그런저런 우리의 문법을 줄줄이 뀄었는데 크크 완전히 지금은 물 건너가고 말았네요.

백일장 시간을 두 시간인가 네 시간을 줬었는데 뭘 쓸까를 고민하다가 시간만 거의 축내 버렸습니다.

마지막 한 시간쯤 남았을 때 문득 대가리에 뭔가가 스쳤답니다.

'고민할 거 뭐 있나? 그냥 내 이야기 쓰자!'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우린 서로 여물이 덜 찼던지 입술은 고사하고 손도 못 잡았던 소년소녀 사이였던 연인이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청상과부가 된 홀어머니 밑에서 저와 동생들은 아스라이 살아나갔었고 그래도 소녀에게는 양부모님이 계셨었지요.

그럼에도 '여자가 배워서 어디에다가 쓰냐!'라는 당시 보수적 정서에 희생양이 된 소녀는 객지에 나가 저보다 빨리 세상 물정을 배워야 했던 소녀였어요.

노동자의 수호신 '전태일'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일터 재봉공장이라고 들어봤지요?

그런 재봉공장에서 가끔은 제 생각하다가 손가락에 바늘 찔리기도 했다더군요.

우리 가끔 오가던 편지에 그렇게 쓰였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매우 서글픈 일로 그녀의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좀 우스운 말이지만, 제 처지에선 장모님 될 분이 떠나시게 된 것입니다.

소녀는 물론이거니와 저도 무척 상심했었답니다.

그러던 중 크게 결심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제 장인 될 사람)와 제 어머님을 엮어 한 부모로 만들어버리는 거가 저의 계획이었답니다.

저희 집에는 김(해태) 양식이나 고기 잡으러 다닐 때 요긴한 작은 나룻배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어린 동생 셋을 태우고 육지를 한참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 배를 세웠었지요.

'아이들아~ 엄마를 시집보내자…'

그렇게 시작하여 모두 슬픔에 울부짖었지만, 차차 마음을 다잡고 그리하기로 맘 잡고 돌아왔던 그 해가 백일장이 있는 날로부터 오래지 않았던 날입니다.

그러나 어머님 재혼 건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소녀와 그녀의 아버님에게도 통지하여 아버님에게선 승낙을 받았었지요.

그러나 저의 그 계획을 접한 우리 문중에선 와락 뒤집어져 버렸습니다.

제가 감당할만한 수준을 넘어서 말입니다.

하는 수없이 120킬로가 넘는 고향길 자전거로 갔다가 도망치듯 다시 그 자전거로 올라오고 말았답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시간이 촉박한 백일장에 써냈었거든요.

분에 넘치는 상장을 받긴 받았는데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했던 저의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중근아~ 글에는 모름지기 진실이 배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네 글에는 그게 빈약해~'

허구도 아니고 실화란 걸 선생님께선 절대로 아실 리가 없었겠지요.

또한, 그것이 고민에 고민이 아니고 일필휘지였다는 사실도 알 리가 없었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조금 서운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공들이지 않고 후다닥 해치운 글에 그토록 큰 상 내린 것이 더 황송했기에 맘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더라고요.ㅍ

그 대단한 분이 바로 영원한 저의 스승 '이만희' 선생님이십니다.

친구야. 냉장고에 물 시원하니? 얼른 한 잔 따라와라~

 

 

3학년이 되자 어느 결엔가 벌써 여물이 꽉 차서 터지고 넘치더군요.

물론 부작용도 심했습니다.

소녀에게 그토록 큰 아픔 줬던 것도 모자라 겨우 수습하여 새롭게 불붙어 자라던 사이 어느 수상한 연분에 얽히어 마침내 두 소녀가 제 자취방에서 마주쳐버린 불상사(?)를 자아내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여물이 너무도 꽉 차버린 부작용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값어치 없는 에로스가 아닌 정신적 사랑(?)도 있었습니다.

만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가 아니고 닿기만 해도 날아갈 것만 같았던 그대가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저의 국어 선생님이었었지요.

그분이 얼마나 예뻤는데요.

글쎄 학교에 나가는 유일한 목적을 대라면 그분 얼굴 보러 가는 것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쓸데없이 칸트·데카르트를 보다가 어느 날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를 만났는데 그놈의 S끼가 제 앞길을 콱 막아버리더라고요.

'어차피 죽을 인생 어쩌자고 이리도 아등바등 몸서리치면서 살아야 하나?'

지금은 그런 슬리퍼가 있는지나 모르겠지만, 500원짜리 슬리퍼 찍찍 끌고서 등교했던 적이 수두룩했었지요.

민가방 모서리만 잡고 깝죽대며 등교하다가 교련선생님한테 허구 지게 터지기도 했었고요.

하필이면 숭일고·경신여고 앞이라서 여고생들 우르르 쳐다보는 그 자리서 말입니다.

친구야. 나도 땅긴다. 선생님 건 유자차로 하고 나는 바가지에 물 한 대박 퍼 오너라!

 

 

그렇고 그런 날들로부터 한 삼십 년 지났는가요?

형님 같기도 하고 누님 같기도 한 나의 선생님들입니다.

선생님들 잘 들 계신가요?

인제 마지막 인사하려는데 갑자기 그분이 떠오릅니다.

'최선' 선생님!

제가 얼마나 맛이 갔으면 졸업 시즌의 담임선생님을 다 까먹었을까요?

아무튼, 모든 선생님!

아프지 마십시오!

절대 아프지 마십시오!

이렇게 살다 보면 그날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앞에 덥석 무릎 꿇고서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죄 지었습니다!'

그런 날을 위해서라도 저도 몸조심하겠습니다.

선생님~ 제게 꿀밤 야무지게 먹이기 위해서라도 절대 아프시면 아니 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

 

 

이 글의 출처는 이렇습니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저의 최고 학부였던 고등학교 총 동문 카페에 들렸었지요.

그리고 그 자리에 '아~! 그리운 은사님'이란 코너가 있기에 거기에 질렀던 글입니다.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