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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느지막이 든 아침(12시경)이 지나쳤던지 졸음이 와락 쏟아져서 아예 이불 펴고 누워버렸는데 어느 순간 쾅쾅 시끄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네요.

부스스한 눈으로 나가보니 언제 왔는지 여동생과 조카들이 와 있었지요.

식탁에 둘러앉은 한쪽에 저도 자리해 앉으면서 개중에 함께 자리한 조카 한 놈을 보고 인사했지요.

'00아 안녕?'

얼떨결에 걔도 '아네~ 삼촌도 안녕하세요?'

'아까 오자마자 인사하지, 인제야 인사하냐?'

'뭐 어때요. 볼 때마다 아무 때나 인사하는 거지, 그것이 어디 정해졌어요?'

어머님께서 조카를 보고 나무라니까 제가 대꾸한 소리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배가 더부룩해서 아무것도 안 뜨고 그냥 들고 나갔던 물통을 챙겨 다시 들어와서 이 글 쓰는 중입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조카한테 나무랄 때 문득 스쳐서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에 살 때 이웃집 할아버지가 웬일인지 퍼뜩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좀 더 들어보면 짐작하실 수 있을 거에요.

시골 옛집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사연은 알길 없지만, 마을 앞 해안가로 쭉 둘린 방죽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댁과 우리 집은 나란히 있었답니다.

 

 

바닷가 쪽엔 저희 집이 또 방죽 너머 육지 쪽으론 할아버지 댁이 가운데 신작로를 사이에 둔 그러니까 아주 이웃이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대략 40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옛적부터 시작하겠네요.

그 마을 산중 가장 깊숙한 골짜기 주소도 없는 무허가 오두막에서 거기 바닷가 할아버지 댁 바로 밑으로 이사 내려올 때가 그즈음이니까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치고는 주위에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을 만치 배움이 꽤 많았던 분이셨습니다.

살아계신다면 지금쯤 거의 백 살도 되었을 거에요.

그런 분이 무식한 말로 '맹자 소학 떼었지', '그 옛날에 중학교까지 마쳤다.' 하면 상당한 식견이란 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저의 큰 댁은 이웃 마을 '광석'이란 곳에 있었는데 거기 저의 친할아버지와도 학문적(?)으로 가까우셨던지 틈나면 안부를 여쭙곤 했거든요.

그런 이유 탓에 더욱 그랬던 걸까요?

이웃집 할아버지께선 그야말로 틈만 나면 저를 불러 세우곤 방바닥에 앉혀놓고서 '천자문'이나 지금 와서 생각하지만, '소학' 같은 구닥다리 책을 꺼내 놓고는 알려주려고 무척 애쓰곤 하셨습니다.

제가 워낙 이러니라. 저러니라 투의 말에 거부감을 느껴서였든지 뭘 하셔도 건성으로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었거든요.

원체 할아버지께서 지닌 게 없는 탓으로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집에 뭔가 보태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래저래 어렵게 사는 중에 오랜 세월 앓고 계시던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자 삶이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집안이 그토록 곤궁한데도 철없는 제가 중학교에 가겠다고 고집부린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그 통에 아버님께서 제 학비 벌려고 무리한 통에 가셨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 낫살 쉰인데 저의 선친 가신 해 연세가 겨우 마흔셋이었지요.

어디 아프리카 난민 얘기 같습니다만, 돌아가시자 치상은 치러야 하는 데 치상 쳐야 할 쌀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티 내지 않고 살았는데 마을 젊은 축들이 들이닥쳐서 마루를 뒤져보고는 부녀회고 어디고 연락해서 곧바로 온 마을을 훑었답니다.

여기저기서 한주먹, 한 숟갈씩 보태어 마침내 자루로 두 가마니를 내려놓고 그걸로 치상을 치렀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때마침 문상 오신 분들도 대부분이 음식이 축나지 않도록 도왔기에 다 들지 않고 남았다네요.

거기 남은 쌀 몇 되가 오늘을 사는 종잣돈이 되었습니다.

남은 그 쌀을 내다 팔아 돈을 사고, 그 돈으로 도매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고…

그렇게 모인 한두 푼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육성회비 냈기에 도저히 불가능할 거로 보였던 중학교 그 중학교에 제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제법 커지자 선친 살아계실 때부터 해왔던 김 양식(해태) 규모도 조금 키웠답니다.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 문다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겠기에 여린 여인의 몸이었어도 어머님 제법 노를 젓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어 저도 물이 무섭지 않았나 봅니다.

할아버지 이야기하다가 잠깐 샜는데 하루 중 어느 때든지 할아버지 만나면 이렇게 받들어서 인사했습니다.

'하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네! 조반 드셨습니까?'

'하네! 어째 요기나 하셨는지요?'

아까 어머니가 조카를 나무랄 때 이런저런 모양으로 제가 할아버지께 인사했던 게 퍼뜩 떠올랐거든요.

할아버지 댁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으로 가진 게 없었기에 한평생 몸을 움직여 그 건더기로 살아가셨는데 알게 모르게 저희 집에 보탬 준 것도 많습니다.

우선 할아버지가 이웃에 듬직하게 버티고 계셨기에 30대의 생과부나 다름없었던 어머니가 뭇 사내들한테 홀리지 않았던 것도 같거든요.

제가 중학을 마칠 무렵에 생긴 일인데요.

바다에서 일 마치고 어머님과 같이 부둣가로 노를 저어 들어오는 중인데 누군가 부둣가에 서서 제 이름을 마구 부르는 겁니다.

가까이 가서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사연으로 녀석이 머나먼 길 달려온 것입니다.

대략 2킬로미터 남짓의 이웃에 좀 큰 마을 '서풍'이란 곳에서 약국을 하는 집 딸이 제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데 그 약국집 딸의 남동생이 달려온 것입니다.

녀석이 전한 소식은 제가 고등학교에 합격했는데 입학금 납부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통지가 전화로 왔다는 걸 전하려고 달려온 것입니다.

요즘으로선 도저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지요?

그 흔한 전화가 70여 호 마을에 달랑 두 대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안이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서 본인한테 직접 전하라는 녀석 누나의 엄명이 있었나 봅니다.

그건 그렇고 그 소리 듣자마자 거짓말 좀 보태서 '아버님 가셨을 때보다 더 크게 한숨'을 내뱉더군요. 제 어머님께서 말입니다.

거의 죽을 힘으로 중학을 마치고 또 동생들이라고 남들 다 보내는 중학을 못 가게 할 수도 없어 죽을 맛인데 제가 고등학교까지 간다고 하니까 그 심정 어땠겠어요.

어쨌든 집안이 어떻게 부서졌는지도 모르게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할아버지의 도움이 더욱 구체화 되더군요.

큰돈은 아니었을지라도 제가 시골에 내려가면 꼬박꼬박 제 손에 지폐 한두 장씩 쥐여 주는 겁니다.

당시 돈으로 오백원짜리 지폐나 천 원짜리 지폐가 그런 것들이었지요.

그리고 언제 한 번은 문중에서 불러서 갔더니 몇만 원이나 된 봉투를 주는 거에요.

문중 회의에서 장학금으로 결정해서 준 돈이라고 했거든요.

비록 그것이 단번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것도 순전히 이웃에 사시는 할아버지께서 손 쓴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2, 3십 년 전까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환상을 먹고 살았었잖아요?

제가 크게 될 줄 믿었는지 아니면 불쌍한 이웃 구제차원에서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됐던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도움은 거기서 그치질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동생이 객지에서 규모가 좀 크다 싶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면 여지없이 재정보증서 두 장씩이나 내라고 했었거든요.

시골집 그거 내 땅도 아닌 나라의 공유수면에 세워진 무허가 건물인데 그 주위 세상 어느 곳에 재산세 만원이나 나오는 집이 있으며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누가 남의 자식 보증서를 끊어 주겠습니까?

어머님께서 울며불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는데 그런 자격 갖춘 집 찾기도 어려웠다고 했었거든요.

이웃집 할아버지께서 그 모양이 딱해 보였던지 장문의 편지를 써 주셨다네요.

그 편지를 들고 면장을 찾아가서 우리 마을 당신이 보내서 왔노라고 이야기하면 통할 거라면서 곱게 싸서 주셨답니다.

그렇게 해서 한 장은 만들었고 나머지는 돌아오는 버스를 놓친 통에 절반만 오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렸답니다.

그러고는 한숨이 절로 나서 어느 가게에 들러서 탄식 반 푸념 반 풀어헤치고 울상을 지었다네요.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이 듣고서 두말하지 않고서 당장에 보증하겠다고 했다네요.

세상에 그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 고마운 은혜 덕에 제가 그럴싸한 회사(?)에 마침내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랍니다.

애초의 의도하고 이야기가 자꾸 틀어지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렵니다.

처음에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 '아까 오자마자 인사하지, 인제야 인사하냐?'를 듣자마자 이웃집 할아버지를 떠올렸다는 이유가 뭐였을지 인제는 짐작할 수 있겠나요?

그렇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가 엄청날 거 같아도 실은 이렇게 미약하지요.

그리고 '보수' / '진보'는 사람으로 딱 잘라서 구분할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가 꿈과 현실에 존재하는 거처럼 한 사람한테도 그것이 공존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내 몸 안에서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는 현상을 보고하는 '체험 삶의 현장' 보고서 정도가 되겠습니다.

 

※ 사전풀이

유생: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 유사(儒士)ㆍ유자(儒者)ㆍ유학생(儒學生).

정절: 여자의 곧은 절개. 정조(貞操).

조반: 아침밥(아침 끼니로 먹는 밥).

요기: 시장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조금 먹음.

주무시다: ‘자다’의 높임말.

하네: ‘할아버지’의 방언(전남).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