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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갑네요. 내 고향 산자락!

 

제가 지금 쓰려는 '봄비' 플래시의 배경이 될 만한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던 중에
아주 반가운 사진 들어간 사이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트 이름이 '산과 바람'인데요, 너무도 반가운 김에 몇 자 적는다는 게
옛 생각이 치밀고 올라와서 그만 페이지 한가득히 됐습니다.

그래서 그 댓글을 여기에도 가져왔지요.

 

- 댓글 -

 

사진 중에 제목이 - 월각산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산행길과 거금도 -이라고 된 사진에서 왼쪽 계곡이
제가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입니다.

인터넷을 즐기지만, 이토록 그 자락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은 여태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반갑기도 하네요.

처음 태어나서는 그 계곡 거의 꼭짓점 부근까지 올라가 물(실개천) 나올 만한 곳에 오두막 세 채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채가 저희 살던 집이었지요. (63년~71년)

제가 거기 산자락에서 아홉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선 이내 계곡의 가장 아래쪽 바다와 닿은 곳으로
이사를 내려와 살았답니다. (71년~79년)

나중에 대처 광주에 유학(?)을 나오면서부터는(80년~오늘) 이따금(방학 때) 고향 집에 내려갔다가
돌아오곤 했었답니다.

한번(고3 시절)은 거기 바닷가 어느 공동묘지에 들렀다가 무슨 맘에선지 산소에 내려갈 때 신고 갔던
신발(고무신) 벗어 놓고서 거기 도화면과 풍양면을 가르는 능선을 타고 올라
몇 시간을 걸어 천등산에 들린 적도 있답니다.

그거 이야긴데요, 천등산을 내려오면서 거기 간 김에 금탑사 비자나무 골까지 훑으려고 했었는데
그보다 한참 어렸을 적 보았던 비자나무 숲하고는 판이하게 달라 보였답니다.

길도 모르겠고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 천등산 편편한 능선으로 와서는 이번에 잘 아는 딸각산 자락의 능선을 타고 내려왔었지요.

능선이 순 넓은 바위투성이였는데 산행하신 분이라면 그곳에 얼마나 가시들이 많은지 아실 겁니다.

특히 말라버린 찔레꽃 덩굴은 거의 살인적이더군요.

이제 겨우 스무 살의 고3 어린놈이 여러 건전한 학습을 다 마다하고 '쇼펜아우어'의
'염세철학'에 빠져 헤매던 시절입니다.

저의 그 나약함을 극복하고자 거기 아버지 산소에서 산행을 결정했었는데
하필이면 맨발에 고무신이라서 신발을 벗어두고 걸었던 겁니다.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70년대에 고무신 세대라면 다 아실 거에요.

고무신에 땀이 차면 얼마나 미끄러운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땀 찬 신발로 뛰기라도 했다간 그것이 아무리 새 신발일지라도 그냥 쫙 갈라져
두 동강이 나던 시절을 기억하실 겁니다.

'고무신 한 짝에 돈이 얼만데…'

그러한 연유로 신발을 벗어놓고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았었는데 그날 발바닥이 거의 죽었답니다.

아~ 반가운 맘에 써 내린 사설이 길어졌네요.

이유야 어찌 됐든 이렇게도 고맙고 아름다운 정보를 내주어 무척 고맙습니다.

날도 많이 풀렸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춥네요.

건강 유의하시고요, 좋은 밤 보내시길…

그럼. 기회가 되면 또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배경출처 → 산과 바람

플래시 안에는 제 유년이 고스란희 든
추억의 그곳이 숨었답니다. 그곳 현실은
너무도 서글프네요. 확인해 보세요!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