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쓰는 편지 공모 당선작 → 할머니의 사랑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는,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보다 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다리가 아픈 손주를 위해
당신은 나의 다리가 되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울고불고 생떼 부리는 나를 등에 업고 전방에 가서 눈깔사탕을 사주고,
밤에는 나지막이 “우리 아가~ 잘자 거라~” 자장가를 불러주었으며
배탈이 나면 당신의 부르튼 손으로 새벽녘까지 배를 문질러주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우리 할머니는, 막내 손주 공부시켜야 한다며
평생을 살아온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등굣길에는 가방이 무거울 거라며 안타까운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떠나고 없지만 지금도 하늘나라 어디선가에서 애타는
마음으로 손주를 지켜보고 있겠죠. 보고 싶네요, 우리 할머니… 사랑합니다.
- [2011년 마음에 쓰는 편지 공모 당선작] 김태홍님의 글입니다. -
[작가평]
사람에 대한 고마움만큼
뒤늦은 후회를 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서야
참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더 미루지 말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성을 다해 보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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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이글을 처음 대하면서 벌써 장전하고 있었답니다.
'혹시 할머니께서 저세상으로 가셔버린 거 아니야?'
예감이 적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컥 쏟아집니다.
글을 대하면서 이렇게 글썽거린 게 도대체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인지도 모르겠네요.
벅찬 감동이 밀려와도 가슴속에 애잔한 감흥만 남았었지 실제에서 글을 보며
눈물 흘리긴 이번이 너무도 오랜만이라 저 자신도 놀랍습니다.
작년 언제 적에 서울에 있는 친구놈 동생 사고로 저세상으로 보내던 날 죽은 놈의 아내
제수씨가 절하는 걸 볼 때도 제 어깨가 들먹였던 경험을 했었습니다.
영락없이 그때의 감흥만큼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바로 전에 썼던 "다 큰 딸에게 '똥이나 싸'라는 아빠의 문자"에서의 여운이
사그라지지 않았던 까닭도 컸겠습니다.
어쩌면 작가의 할머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모질고 세찬 풍파 속에 한 많은 인생
사시다 가신 저의 외할머니가 강림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니까 눈물이 말라 자국이 되었는지 쓰고 있는 모니터가 입체로 보이네요.
저도 돌아가신 외할머니 부르며 맺으렵니다.
'할무이~ 할무이~ 여기요! 허리 펴고 내려다보세요!'
살아계실 때 저는 막돼먹은 엄청난 불효자였습니다.
그래서 천벌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머님 계신 동안만큼은 최소한 사람 모습 갖춰야 할 텐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집안에 함께 살면서도 말입니다.
여기까지 오니까 인제는 눈물이 거의 그쳤습니다.
아가들 울면 뚝! 해서 그친 거처럼 쏟아지던 그 눈물 완전히 그쳤습니다.
막돼먹은 제게 이토록 큰 은혜 주신 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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