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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SK에 있었는데 지금 제 맘의 당 점은 다른 곳에 꽂혔습니다. ♣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일단 그림부터 올려놓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몹시 둔했던 터라 필드에서 뛰고 달리는 게 거의 거북이 수준이지요.

그렇다고 아예 접고서 굼벵이처럼 살았던 건 또 아니었지요.

예전에 어느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도 나왔는데 '혼자 하는 놀이' 이를테면 경쟁하지 않고 단독으로도 해볼 수 있는 거 있잖아요?

예를 들면 '철봉'이랄지 '장거리 달리기' 등등은 눈치 볼 것도 없고 그저 흥미만 있으면 되니까 곧잘 즐겼답니다.

다시 생각하니 그렇네요.

축구나 야구 또는 배구 등 단체로 뛰면서 팀워크를 중시하는 곳에선 얘들한테 당연히 버림(?)받았다고 말하는 게 정직하겠네요.

그럼에도, 속상하거나 부끄럽진 않았답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거 하면 됐으니까요.

야구 이야기하려다 옆길로 샜는데 다시 야구로 돌아오겠습니다.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통에 한 해 선배님이 돼버린 '선동열'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고등학교 다닐 때도 얼마나 잘했던지 어느 전국대회 결승전쯤 되었을 건대 그분이 나왔던 그걸 보려고 무등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제가 눈이 나빠서 그랬는지 눈앞을 가로막은 그물망 탓이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그물망 그 거 너무도 거슬리더군요.

제 생애 처음으로 찾았던 야구장인데 그 뒤로는 아직 들린 적이 없답니다.

야구를 아는 수준이 겨우 이따위밖에 없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들이고 난리냐고요?

'아니오! 저도 좋아하는 선수가 여럿 있었거든요. 그 이름도 지금은 다 잊었지만, 말이어요.'

양준혁 아 양준혁은 그만뒀으니까 빼고 김동주, 이대호, 이종범‥ 그들이 뛰면 어느 팀과 붙든 그들 당사자를 응원합니다.

SK에서 요즘은 기아(사실은 해태타이거스)로 그 응원포지션이 바뀌었는데 설사 그들이 우리 팀 빵빵 두들겨도 기분이 좋습니다.

대신 그분의 개인 성적만 팍팍 올라가고 팀은 우리가 이겨주길 은근히 바라지만 말입니다.

'SK에는 막상 확 떠오르는 선수도 없었는데 왜 응원했었지?'

되짚어보니 SK를 응원한 것이 아니라 '김성근 감독' 님을 응원했던 거 같습니다.

그것도 그분의 이력에 대해 아는 거 하나 없이 그냥 미디어에 비치는 이미지만을 갖고서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우직하고 뚝심 있고 강골 찼던 이미지!'

제 맘속에 그것은 '대한민국의 아버지'를 부르는 다른 이름으로 새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풍겼던 그 품새를 흠모했었나 봅니다.

어찌 됐든 오늘 브라우저에서 야구에 대한 어떤 설문에 투표하면서 그분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 탓에 누구였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검색으로 돌변하였답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에 대한 정보를 캡쳐하여 이곳에 올립니다.

 

쌍방울 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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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

 

쌍방울 레이더스(영문 표기 : Ssangbangwool Raiders)는 대한민국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한 프로 야구팀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 소속으로,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과 군산월명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초대 감독은 김인식이었다.

 

1990년 3월 31일에 구단이 창단된 후, 1990년 5월 11일 프로 2군 리그에서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1991년 시즌부터 1군 정규리그 경기에 참가했다.

매년 하위권을 맴돌았으나,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1996년 정규시즌 2위, 1997년에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다.

 

약팀의 이미지를 조금씩 벗겨 내면서 서서히 강팀으로 변모하고 있을 즈음에 IMF 사태를 맞게 된다.

경제 위기의 여파로 인하여 모기업인 쌍방울 그룹이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도 극심한 재정난을 겪게 되었으며, 1997년 10월 15일에 모기업인 쌍방울 그룹이 부도가 났다.

이때 이후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결국 쌍방울 레이더스는 2000년 1월 7일에 해체되었고, 기존 선수단과 신인 지명권은 SK 와이번스에 인계되었다.

쌍방울은 1999년 8월 회사 정리 절차 인가가 결정되었고 대한전선 계열로 넘어가 현재는 "트라이 브랜즈"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그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의 연고지였던 전라북도는 무연고 지역이었으나, 2003년에 KIA 타이거즈에 반환되어 2007년이후 매년군산시에서 경기를 치른다.

 

통산 성적은 9시즌, 1140경기 455승 655패 30 무승부, 승률 0.410이다.

 

 

구단 역사

창단과 프로리그 참가

한국 야구 위원회는 1989년에 신생팀 '제 8구단' 창단을 결의하고 희망 기업을 선정하게 된다.

신생팀의 연고지는 전라북도 지역으로, 홈 경기장은 전주 야구장으로 하였다.

창단 과정에서 전라북도 연고권은 당시 전라도 지역 연고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구입하였다.

본래 창단 과정에서는 쌍방울그룹과 미원그룹의 컨소시엄 형태로 창단을 추진했으나, 후일 미원그룹이 창단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1990년 창단 당시 1년간은 2군 리그에서 경기를 치렀고, 1991년부터 정식 프로 야구 팀으로 승격되어 1군 정규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1991년 ~ 1995년

신생 창단 팀 쌍방울 레이더스는 대주주 모기업의 규모가 작았기에 야구단 운영에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8개구단 팀들과 전력을 비교하면 선수진이 얇았었다.

쌍방울 구단은 신생 창단된 팀으로 선수들이 부족한데다 자금력이 탄탄한 편이 아니었고, 연고지인 전라북도 지역 역시 그렇게 우수한 팜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타 팀에서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을 많이 영입해서 효과적으로 이용했었다.

이 시기에 쌍방울은 매년 하위권 성적을 거두었다.

 

1996년 ~ 1999년

매년 하위권 팀으로 분류되었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6년에 김성근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의 지도 하에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6년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여 돌풍을 일으켜 창단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맞아 5차전 접전 끝에 2승 3패로 분패하였다.

그 다음 해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하여 전년도 1996년 시즌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다만, 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패하고 4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1996년과 1997년 시즌 성적을 놓고 보면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은 기존의 약팀의 이미지에서 강팀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97년 12월, IMF가 터지면서 모기업이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게 되자,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 역시 여파를 미치게 되어 구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재정난을 심각하게 겪으면서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은 구단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핵심 선수들을 상대로 '선수 팔기'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 무렵 1차 지명하였던 투수 조진호는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다.

결국, 1998년 박경완과 조규제는 현대 유니콘스로, 1999년에는 김기태와 김현욱은 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는 등 쌍방울 레이더스 핵심 선수들 대부분이 이러한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의 극단적인 '선수팔기'작업에 의해 팀을 떠남으로써 구단의 전력은 바닥을 치게 된다.

1998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도입되자, 쌍방울 레이더스의 야구단 운영은 더욱 가혹해지는데, 비싼 돈을 주고 선수를 쓸 수 없었고 중도 퇴출되어도 마땅히 대체 선수를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8년에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9년에 제이크 비아노, 전해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마이클 앤더슨 등 투수 용병 선수를 영입하였지만, 이들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열악한 시설 환경과 김성근 감독의 훈련량에 못 따라가 시즌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이 시즌에는 김기태, 최태원, 조원우, 김원형 등이 활약하여 정규 시즌 6위에 마쳤다.

1999년이 되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만 갔다.

구단 대주주였던 모기업이 사실상 팀 운영을 할 수 없게 되면서 KBO에 의한 위탁 관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팀의 4번 타자 김기태와 팀의 에이스투수 김현욱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는 등 주축선수들은 거의 빠져나가게 되었다.

그럼에 따라 쌍방울 레이더스에서의 열악한 상황과 빈약한 선수층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시즌 중 김성근 감독은 사임하였고, 1999년 시즌 단일 시즌 최다 패 기록인 97패(28승 7무)를 기록하면서 마지막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구단 해체와 SK 와이번스와의 연관성 논란

IMF 여파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어야만 했던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은 1998년부터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팔기'작업식으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게된다.

1999년 7월 16일, 이의철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가 박용오 KBO 총재와의 비밀 회담에서 최초로 매각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매각협상은 지지부진, 진전이 없었고, 결국 1999년 11월 16일, 쌍방울 레이더스 김종철 신임 구단주는 박용오 KBO 총재와의 회담에서 '2000년 시즌 팀을 꾸려나갈 능력이 없다'고 최초로 밝힌다.

이때, 프로야구단에 관심을 보인 SK그룹은 쌍방울과의 협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KBO하고만 접촉하면서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의 인수가 아닌 새로운 구단의 창단으로 프로야구계에 뛰어들 계획을 갖는다.

법정 관리 중인 쌍방울 입장에서는 야구단을 넘기는 인수 조건으로 최대한 많은 금액을 받아내길 원했지만, SK그룹은 반대 입장이었다.

곧 자동적으로 퇴출되는 쌍방울과 만날 이유가 없는 까닭이었다.

즉, SK그룹은 쌍방울이 자동으로 퇴출되는 2000년 2월 12일까지 기다렸다가, 새로운 팀 창단의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양쪽다 팽팽하게 '줄다리기'식으로 매각 당사자들은 버티기만 했었다.

결국, 쌍방울은 얼마 못가서 해체를 하기로 선언하고, SK그룹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SK가 프로야구에 참여할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게 된다.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는 해체되었고, SK는 인수가 아닌 새 팀의 창단으로 레이더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레이더스 소속 선수들은 전원 웨이버로 공시되었고, SK 와이번스는 자유계약 선수 영입 형태로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 선수들을 영입하였다.

 

 

※ 대한민국 프로야구에 대한 어느 참고도

 

제가 응원하든 말든 그거와 무관하게
그것이 모두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어
일상을 비옥하게 살찌우는 자양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