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옛날 온 누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황소개구리 그놈들 다 어디로 갔을까???
글 제목에 '개구리'가 끼었기에 들먹여 본다.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 젖을 거의 못 먹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인간이 저마다 최소 한두 개의 젖을 지녔다.
그러나 그 모든 젖이 육아에 특화되진 않았을 터다.
남성들은 그 젖통이 제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 젓으로 아이를 키우진 않을 터다.
또 여성이 아기 낳았다손 치더라도 양 가슴 모두의 수유가 보장되진 않을 터다.
그중 겨우 하나라도 착유 가능할지언정 그 양이 너무나도 적다면 이 또한, 아기의 정상적 발육되지 않을 터다.
나의 어머니는 여기에 나열한 예시 중 그 마지막 예시가 들어맞는다.
위로 쌍둥이 누님들이 계셨는데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두 분 모두가 그냥 떠나셨단다.
그런 뒤에 다시 생긴 게 나였는데 나 역시도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기반이 취약했기에 반드시 살려내야 하는 특별한 조치가 급했으리라!
주변에 주민도 거의 없는 외진 산골에서 말이다.
그렇게도 취약했던 내 삶의 일기장은 내 몸을 통째로 이모님께 맡기는 거였단다.
마침, 이모님도 나와는 한 살 터울로 형님이 먼저 세상에 나온 터라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그리했단다.
그러나, 그 이모님께서도 '홀 젖'이라는 생리적 한계를 지녔을뿐더러 그 하나를 갖고서 사촌 형님과 내가 밤낮으로 싸우며 우는 그 탓에 긴긴날을 버텨내지 못했다나 뭐라나!
그리됐기에 이모님께서 나와 형을 살려내기 위한 '특별한 조처'를 발동했단다.
바로 그 특별한 조처라는 게 이런 거였다.
그 당시 초등학교-3학년쯤에 다니던 큰딸의 학업을 멈춰 세우고 그 딸을 우리 집에 보내서 나를 키우라고 했다는 거다.
그렇게 시골에서 산골의 우리 집으로 들어온 누님께서 날마다 나를 업고서 낭창한 막대기 하나를 든 채 그 산골 논둑과 개울을 훑었는데 그 까닭이 바로 '개구리'를 잡기 위해서였단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잡아 온 개구리 겁이 나서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었는데 그 어린 누님께서 몸소 시범을 보이셨단다.
집 앞에는 바깥마당과 건너편 밭둑 사이로 작은 개울이 흘렀었는데 잡은 개구리를 가져가서 머리와 다리 끝 잘라낸 뒤 껍질을 벗기고 그 내장도 털어낸 뒤 깔끔하게 씻어 내고는 개울가 주변 널따란 바위 물로 닦은 뒤 그 바위에 줄줄이 널어서 말렸었다네.
그렇게 해서 말린 개구리를 차곡차곡 모았다가 적당한 때 작은 솥에 쌀과 함께 넣고는 '죽'을 쒔단다.
그 죽이 바로 나의 생명줄이었다는데-
그 산골에서 그렇게 살아난 나는 살아난 지 8년째-아홉 살에 그 지역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다.
그 시절에 나처럼 아홉에 입학했던 애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그 열에 아홉은 곧바로 2학년에 편입-학교에선 그것을 '월반'이라고 부름-했기에 그 산중에서 등하교하는 나와 나의 사촌인 옆집의 친구에다 우리 터울에서 마을 쪽으로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외따로 사는 또 다른 친구를 포함해서 달랑 셋만이 그 아홉을 유지한 채 일 학년에 남았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내가 아홉에 들어갔지만, 호적에 오른 주민등록상 나이는 한 살이 덜하거든.
어쩌면 그 탓으로도 내가 상급반에 못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지-
어쨌든 오늘은 유튜브에서 개구리를 만나 갑자기 그놈 생각이 나서 이렇게 써보는데 사실은 여태 써 내려간 그 사연보다는 90년대 초중반 그 시절 생각이 나서 시작했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얼마나 더 발전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우리가 지내던 사무실이-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 주변의 논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랬기에 밥 먹고 별생각도 없이 출근하는 사무실 가는 길에서 너무나도 익숙했던 소리가 바로 그 '황소개구리' 울음소리였었다.
중저음에 기괴하고도 우렁찼던 그 소리는 마치 우리의 전통 악기인 북을 찢는 소리이자 장고를 찢는 소리와도 같았으리라!
그 시간과 횟수가 있어 '하루에 5분 3회'로 약조하고 그 약조대로 개구리가 울었다면 그 얼마나 좋았었을까?
우리는 '대한민국 해고자'였기에 그 어떤 개구리를 만나도 충분히 협상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어떤 사전 연락도 없이, 그 어떤 환경(소음, 혐오, 사기 저하-) 제약도 없이 그 시절 황소개구리는 아주 옛날 우리 동이족의 조상인 '진시황제'도 당해내지 못했을 터다.
그런데 그 개구리들 지금 모두 다 어디로 갔지!
그 시절처럼 내가 술은 안 하기로 약조(내 맘과 약속)했기에 다시 만나면 술은 못하더라도 '쿨피스(이게 지금도 있나?)'라도 겸상하면서 옛이야기 나눌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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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세월 - 서유석의 노래 ‧ 1986년
가사
가는세월 그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료
하지만 이것만은 변 할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가고 해가가고 산천초목 다바껴도
이내 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가고 해가가고 산천초목 다바껴도
이내 몸이 흙이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이내 몸이 흙이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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