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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그리운 추억 여행

 

며칠 전엔 문득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주 야트막한 산중에서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진학하여 아마도 한 학기 정도를 거기서 살았는데 거기는 참 맑고 조용했었죠.

 

그곳에는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떠올랐던 건 그곳 생활 중 보리나 콩 혹은 벼 타작하던 게 떠오르데요.

 

그 시절은 손수레도 없었지만, 우리 사는 곳으론 손수레가 드나들 만한 샛길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해마다 농산물을 타작할 시기가 오면 거대한 탈곡기며 발동기를 아랫마을 어른들이 죽을힘 다해서 지게로 지고 와서는 말뚝 박아 발동기와 탈곡기를 고정한 뒤 발동기와 탈곡기 사이에 폭넓은 벨트 걸고는 타작했던 겁니다.

보리 벼에 심지어는 콩 같은 것도 그걸로 털었답니다.

 

보리 벼 털 때 그 터는 소리가 달랐기에 탈곡기 기계도 달랐던 거 같은데 그 부분은 선뜻 떠오르지 않네요.

초등학교 일학년 첫 학기 어느 무렵에 우리 집은 큰 마을로 이사했었고 시절도 급속히 변했답니다.

그건 '군사독재 장기 집권'의 실질적 아이콘이라 해도 무방할 '박정희'가 주창한 '새마을 운동'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국의 어느 지역 여느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시절 우리 마을에서도 온 마을 주민들이 날이면 날마다 떨쳐 일어나서 일하고 또 일했었습니다.

- 비좁은 골목길 넓혔고 -

- 돌담의 담장 헐고 시멘트 블록을 쌓았으며 -

- 초가지붕 걷어내고 그 집의 사정에 따라 함석(양철)에서 기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로 지붕개량 했었고 -

- 비좁은 마을 길은 물론 농로들도 작은 차량이나 농기계가 드나들 수 있게끔 넓어졌어요. -

 

1970년대 초중반이 바로 그런 '국토 물리적 환경의 혁명적 개조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를 거치면서 도로 환경이 좋아지자 '손수레'를 비롯한 운송장비가 대거 마을에 들어왔었고 농사 장비에서도 인력 위주의 삽질이나 쟁기질에서 점차 경운기나 트랙터로 발전해가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추억 속 그 탈곡기도 자취를 남기지 않았답니다.

- 베릉베릉~ 베릉^ 했었던 벼 낱알 채취기 -

- 타타타타~ 타닷^ 했던 보리·콩알 탈곡기 -

그것들이 어디로 갔을지 지금까지도 저는 모릅니다.

다만, 십수 년 혹은 이십수 년 전 우리 지역의 어느 박물관에서 '맷돌' 등 여러 장비와 함께 만났을 뿐 그것이 다입니다.

 

그런 까닭으로도 그 옛날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또 그 시절에 썼던 쟁기를 비롯한 농기구들도 그립습니다.

 

얼마 전 그날은 그 시절의 옛 농기구들을 찾아봤는데 인터넷에 다양한 모양새로 담겼더라고요.

- 농촌진흥청 어린이 홈페이지(http://www.rda.go.kr/children/childrenMain.do)가 바로 그곳입니다 -

 

저는 그날 거기 그림들 복사해다가 제 컴퓨터에 저장도 했었답니다.

그리고 어제는 제 홈피 중 하나에 올리기도 했지요.

- http://hsmj.woobi.co.kr/ -

 

그림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한군데서 다 보려니까 약간의 공작도 필요하데요.

이런 식으로 보이게끔 말입니다.

 

~ 하낫둘^ 센넷^^ ~

 

 

 

Posted by 중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