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놈이 나들이 나갔다가 그만 문명의 이기에 흠뻑 취해서 돌아왔네요. ♣
자정을 넘었기에 어제 일이 되겠네요.
알만한 벗들이 사무실 하나를 마련해 치장을 마치고 드디어 개소식을 한다기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거기(운남 9단지 근처)가 제 사는 곳(첨단 금호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기에 처음엔 자전거로 갈 생각이었거든요.
죽을 힘 다해 찾아다니지 않더래도 그 자리 살짝 못 미치는 지점을 운동한답시고 자주 나다녔기에 한 시간 남짓이면 찾아갈 거리입니다.
그러잖아도 그저께 미리 자전거로 미리 답사했었던 까닭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오후 5시부터 식을 시작한다고 그 일 중심의 스마트폰 '카카오~'에 올랐더라고요.
자전거로 간다면 해가 저물기 전에 거기서 자리를 떠야 집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리이기도 해서 걱정도 들더군요.
이를테면 집을 나서기 전에 저 홀로 김칫국부터 마셔버린 것이 걱정의 근원이 됐답니다.
'거기 나가면 정말 몇 년 만에 보는 애들도 있을 텐데 해 저문다는 핑계로 덜컥 일어설 수야 없잖겠는가?'
'그러면 택시를 탈까? 안 되지. 많이 들어갈 거야. 그러면 어떡해?'
'에라~ 그냥 버스를 타자! 마을버스? 시내버스?'
자전거로 출발한대도 네 시가 되기 전에 출발해야 제시간에 도착할까 말까 하는 그런 시점인데도 그 시간에 김칫국 마시느라고 네 시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택시를 탄다는 건 비용 부담 탓에 안 되겠고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려고 작정했는데 그 시간에 또 출발 준비(자전거로 출발한다면 필요한 장비와 차림새)를 모두 내려놓고서 서둘러 컴퓨터를 켜야 했습니다.
왜냐면 제 사는 곳에서 그쪽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확인하고 나야 더 빠를 것 같기에 말입니다.
몇 년 전부터 지금은 함께 지내는 막냇동생이 산업재해를 입고서 시내병원 곳곳을 전전했을 시기에 때로는 제가 집에서 거기로 문병 갈 일이 잦곤 했었거든요.
그래서 집 근처 버스정류장 노선 몇 개를 미리 웹문서로 만든 적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그 문서 펼치려고 컴퓨터를 켜는 거였었지요.
마침내 문서를 확인해 보니 '첨단20'이라는 노선의 버스를 타면 곧바로 갈 수 있겠더라고요.
다시 스마트폰 챙기고, 동생이 아직 입원했을 당시 써왔던 교통카드 챙기고 혹시 잔액이 없을지도 모르니 천 원짜리 두 장에 백 원짜리고 오백원짜리고 잔돈 있는 대로(8~9백 원 됐지 싶어요.) 빼기 쉬운 주머니에 챙기고 가스레인지, 전기, 여기저기 걸어잠글 데 챙기고 집을 나섰습니다.
네 시 반을 넘어섰네요.
늦었습니다.
부지런히 숨 가쁘게 걸어서 마침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요.
그러곤 고개를 들면서 '월계중학교? 뭐야! 내가 왜 여기에 있어!!!' 화들짝 놀라 재빨리 걸어온 길 되돌아 아파트 쪽으로 향했습니다.
네. 제가 가야 할 곳은 거기(아파트 후문 쪽)가 아니라 아파트 정문 쪽에 있는 '첨단 금호아파트' 정류소로 갔어야 옳습니다.
제 사는 아파트 현관에서 두 곳 모두가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5분 남짓은 잡아먹거든요.
도대체 아까운 시간 얼마만큼이나 까먹어 버렸을까요?
이번엔 정말이지 x 빠지게 비틀거리는 몸으로 정문 쪽 정류장을 향하여 내달아 걸었답니다.
제가 이렇게도 덤벙대고 있는 게 너무도 애처로워서 하늘이라도 나서서 도운 걸까요?
배차간격이 15분이나 되는 녀석이 제가 정류장에 들리자마자 들어옵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 카드를 어디에다 댈까요?'
'아~ 네! 음~ 거기 대세요~'
기사님이 참 친절하시더군요.
북에서 온 간첩도 저보다는 더 나을걸요.
아무튼, 부끄러워서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됐기에 얼른 훑었는데 2천 원댄지 2만 원댄지가 보였답니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서 행사장 가까이에 들어갔더니 누군가가 반갑게 맞으면서 저를 불렀지요.
제가 집안에 칩거 중(?)이라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꽤 부지런한 동냥으로 여겼던 착한 동생이 제 손을 잡고 이끌어 줬답니다.
그런데 막상 올라가 보니 예상과 달리 모르는 면상이 부지기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렇게 꼽사리 좀 끼려고 왔습니다!'
정말이지 낯이 뜨겁더군요.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몇 분이 반갑게 아는 채 해 줍니다.
'앗 형님! 이거 얼마 만이에요. 절받으십시오!'
반가운 맘에 너스레를 떨자 시인의 풍모 그대로 따사롭게 눈웃음을 머금고서 자리를 권하더군요.
그분을 포함하여 그 자리 오신 몇몇 분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에 알게 된 제게는 큰 자산이며 선배 되는 분들입니다.
저는 늘 집에 처박혀 있기에 주로 듣기만 하려고 나갔던 참이었고 또 자리가 어두워지니까 너나 할 것도 없이 조근조근 나누고 있을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그런저런 이유로 그 자리를 파하고서 지역주민(?)과 함께 나누는 '작은 음악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내내 앉았다가 마무리가 되자 일어섰었거든요.
자리에 깔렸던 걸상 몇 개를 모으면서 또 홀로 궁상을 떨었었지요.
'어떡하지? 사무실로 올라가 볼까? 말까?'
'그런데 사무실 입구가 어디야? 이쪽인가? 분명히 좀 전까지도 무슨 빌딩이라고 깜빡였었는데 그게 어디로 간 거야?'
'에이~ 차라리 집으로 가자!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야 버스를 탈 수 있지?'
그 자리에서는 괜히 창피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눈썰미를 굴려 도로가 있을 만한 곳으로 걸어나왔답니다.
좀 넓은 곳에 이르니까 '폐소공포증(?)' 같은 답답함이 풀리더라고요.
하여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물었답니다.
'9단지는 어디고 10단지는 어디에요? 제가 버스 탄 곳을 찾는 중이거든요.'
제가 섰던 곳이 마침 두 단지의 가운데쯤이나 되는 가 보더라고요.
제 시력이라도 멀쩡하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짐작으로도 대충 깼을 터인데 그게 아니기에 알려주는 곳으로 갔더니 아닌 게 아니라 거기 버스정류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타고 갈 노선(첨단20)은 거기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건너편이 제가 거기 왔을 때 내렸던 자리가 아니더군요.
'그래 이렇게 가까울 리가 없지. 조금 더 나가면 있을 거야!'
짐작한 대로 넓은 길을 따라 살짝 더(아마도 100미터 거리도 안 되었을 거에요.) 나갔더니 그토록 찾았던 정류장이 보입니다.
거기 정류소에는 시내버스의 실시간 정보를 알리는 '시내버스안내 단말기'가 있었고요, 타야 할 차가 직전에 떠났던지 다음 차가 들어올 시간이 무려 13분이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시간 그렇게도 많이 남은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답니다.
왜냐면 제가 말로만 들었던 그거 / 교통카드에 남은 잔액이 얼만지 그냥 알아낼 수 있는 그 거!!! '교통카드 잔액조회기'가 그곳에 붙어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제 사는 곳 버스정류장(월계중학교)에도 '시내버스안내 단말기'는 있지만, 그것은 없기에 제가 맨 처음 본 것이라서 처음엔 호기심이 먼저 일었었고 불현듯 '요걸로 혹시 교통카드???' 잽싸게 호주머니에서 아까 차에서 미심쩍게 봤던 교통카드를 꺼내 들었답니다.
그러고는 그거 단말기에 붙은 '교통카드 잔액조회기(오늘에서야 이름도 알았다.)'에 뒤로도 대보고 앞으로도 대보고 그랬답니다.
'223 10'이라고 표시되었는데 '2백2십3원'이라는 거야 '2만 2천3백십 원'이라는 거야!
이것이 은행 단말기도 아니고, 십 원짜리 아래로는 거래하지도 않을 테니까 2만 원이 맞을 거야.
그래 저래 물고기 물 만난 듯이 촌놈 좋아서 뒤집어지고 말았답니다.
짧게 느껴졌던 버스 기다렸던 시간이 다 가자 마침내 버스가 다가왔지요.
이번엔 살짝 더 유심히 교통카드 단말기를 살폈는데 남은 잔액이 '21~'로 시작했었지요.
흐뭇했습니다.
흐뭇했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네요.
버스에 올라 감상에 젖어 지그시 감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맨 앞쪽의 전광판 글씨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는 이번에 내릴 데와 다음에 내릴 곳을 글씨로 알리더군요.
한글 말고도 영문으로도 간략하게 토가 달렸네요.
'This Stop' 내지는 'Nest Stop'으로 말입니다.
또 재미난 것은 버스기사자리와 승객 사이엔 칸막이가 있다는 거 마지막으로 또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면 시내버스 자리에 팔걸이가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 어제 촌놈이 나들이 나갔다가 그만 완전히 문명의 이기에 흠뻑 취해서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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