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고 하던데 세상이란 참 넓기만 합니다.
▲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고 하던데 세상이란 참 넓기만 합니다. ▲
꽤 오래전부터 아는 형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문자가 몇 번 들어오더라고요.
'이주민 인권과 노동권' 어쩌고저쩌고… 뭐 이런 식의 문자였지요.
너무도 기나긴 시간 그 자릴 떠나서 제 한 몸 간수도 못 한 제 처지도 한몫했지만, 그냥 못 갈 것처럼 반박 문자를 보내 놓고는 슬며시 찾아가 봤습니다.
먼 거리라서 저 홀로 찾아가기는 실제로 무리였기에 사전에 막냇동생한테 말하고는 녀석 퇴근길에 함께 찾아갔답니다.
찾아간 곳(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외관은 컸지만, 우리 함께할 자리(4층 중회의실)는 말 그대로 아담합니다.
4층에 올라섰더니 문자 보냈던 형님이 먼저 반갑게 맞아주네요.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에 모르는 얼굴 몇몇 사이로 옛 친구놈이 쏟아 내릴 듯 넘실대는 미소로 두 팔을 쫙 벌려서 반겨줍니다.
또 다른 친구놈은 녀석의 버릇대로 버럭 소리까지 내지르며 달려와 안아줍니다.
우리 가슴은 요란했지만, 그래도 낫살 들 만큼 들었으므로 알차게 인사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덧 목사님이 보였습니다.
애들을 떨치고는 와락 다가가 인사했지요.
너무도 반갑습니다.
두 녀석이야 최근 몇 년 새에 한두 번은 만났던 친구들이지만, 목사님(무등교회 목사)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나뵙습니다.
물론 두 친구도 그 무렵부터 만났던 게(목사님의 교회(기노련 사무실이 거기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나 그 주변 노동단체(광주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실) 인연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목사님은 무슨 일로 연이 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그 시절 전국 어느 곳에서나 민주화 바람이 일었었고 노동계에서도 들불처럼 민주노조운동이 번졌던 시기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친구들인데 늘 사업 중심에 있었던 그들과 달리 전 아무것도 아닌 투명인간처럼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나부랭이나 다름없었답니다.
아무튼, 다시 만나니까 반갑습니다.
특히 목사님은 다시 만난 지가 그로부터 꼬박 삼십 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그 사이 한두 번은 만났었을 수도 있지만, 제가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고 말이에요.
저는 그간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 기억을 더듬어 목사님 흔적이라도 발견해 인사드릴 요량으로 평소 잘 쓰지 않았던 '안경'까지 챙기고 나갔답니다.
오로지 목사님을 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목사님 강의 중 내내 저는 딴 곳으로 정신이 팔렸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지금 목사님은 어디에 살고 계실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걸린 강의와 토론을 겸한 묻고 대답하기가 끝나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답니다.
이렇게 그냥 끝나는 거냐고 묻자 친구놈이 대뜸 그러네요.
요즘은 예전과 달리 술 마시고 어쩌고저쩌고하는 뒤풀이 같은 게 없어졌다는 겁니다.
제가 술을 먹지 않기에 그것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냥 헤어진다는 게 저로선 섭섭했답니다.
그래도 훗날 기회가 온다면 또 만날 걸 기약하면서 우리 그날 풋풋하게 헤어졌답니다.
오늘은 그날 여기저기서 목사님과 친구놈에게 흘려들은 목사님 근황을 쫓아 그 근거지를 인터넷(다음 지도)을 통해 확인해 봅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제 사는 곳(광주광역시 광산구 첨단지역) 우리 집에서 목사님 사는 곳(무등교회)이 겨우 두 블록 사이에 있지 뭡니까?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요?
삼십 년도 더 긴 세월 동안 만나보지 못한 그 목사님이 말입니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고 하던데 세월 앞에 세상이란 참 넓기만 합니다.
저를 사이에 두고 쉰 줄을 넘긴 친구 두 놈이 앉았는데 제 대가리만 어째서 허여네요.
아~ 제정신의 밑바닥 한 곳을 채워주셨을지도 모르는
바로 그분 목사님(무등교회 담임이자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입니다.
바로 이 자리(합수 윤한봉(일명 5.18 최후 수배자) 기념사업회 주최 인권교실 제2강)였습니다.
지도에서 응암공원 왼편으로 미산초등학교 바로 오른쪽이 제 사는 아파튼데 공원 오른편으론
한 블록 너머에 무등교회가 보일 겁니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달랑 두 블록뿐이 아닐는지요?
인제 위치도 알아냈으니 시간이 나면 한 번쯤 들러볼 생각입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종교라는 것과 담쌓고 살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으니 부끄럽네요.
실업자 주제에 딱히 드릴 것도 없겠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안부라도 여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 자리 초대해준 형님도 고맙고 거기 함께해준 친구들도 고맙네요.
합수 윤한봉 기념사업회에 열과 성의를 다하는 형호 형님도 고마웠지만,
친구들아 마찬가지로 너희도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