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가끔은 대한늬우스 같은 게 보고 싶더라고요. ♣
♣ 아주 가끔은 대한늬우스 같은 게 보고 싶더라고요. ♣
텔레비전 정규방송에서 내보내는 '대한늬우스'를 예전엔 몇 번인가 만나곤 했었는데 요즘엔 도통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나고 자라면서 큰 마을로 나왔던 시골 마을은 76년도에 혁명적인 에너지 110볼트의 전기가 들어왔답니다.
그러하기에 텔레비전 보급도 대단히 더뎠답니다.
70여 호 마을에 달랑 두 대의 텔레비전이 전주를 통해서 들어왔던 전기보다는 몇 년이 앞서 들어왔었는데 발동기를 돌려 축전지를 충전시키고 그 전원으로 텔레비전을 봤을 겁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날씬한 다리가 네 개였던 당시의 텔레비전이 아마도 금성사에서 나왔던 좌우로 문짝이 여닫히는 투박한 텔레비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온 마을 주민이 밤이면 밤마다 거기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두 패로 갈리어 우르르 둘러싸였었지요.
그러니까 텔레비전을 놓고 사는 두 부잣집은 밤이면 밤마다 마을 공동체의 모임터이며 문화생활의 출발점이며 더 물리적으로는 가설극장이 된 것입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오늘의 주인공 격인 '대한늬우스'는 애당초 기억에도 없고 '전우-라시찬', '축구-차범근과 이회택'이나 '프로레슬링-김일' 등등이 아스라한 기억으로 올라오네요.
그러함에도 가끔 그것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묘한 향수를 자극하곤 했는데 아마도 거기 뉴스를 진행하는 말투가 별나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요것 소개하려고 그것을 다시 볼 수 있는 KTV 한국 정책방송 홈피에 들러서 편성표를 봤더니 '대한늬우스' 말고도 제가 많이 자랐을 때(고등학생이었을 때 꼬막만 한 텔레비전수상기를 들였답니다.) 한 주일 내내 그것 보려고 기다렸으니까 무척 즐겼던 '베스트셀러극장'도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74년에서 87년까지의 기간)이 짧지도 그렇다고 그리 길지도 않는 세월이지만 나라 전체를 보나 제가 살았던 가문이나 연고지 환경을 보나 또 저 개인적인 처지의 부침을 봐도 매우 격동적인 세월이었네요.
며칠 전에 그 시절 차범근과 라시찬을 봤던 시골 마을에 특별한 뜻도 없이 그냥 다녀왔답니다.
아주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랫집 동생들 둘이 객지에 나가지 않고 시골집에 몸담고 있는데 벌써 녀석들이 서른의 중반을 넘어선 노총각들이 되었더라고요.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에 아무 말도 전하지 못했답니다.
제가 살았던 삼사십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없는 집안의 기둥엔 초라한 서까래들이 언제라도 주저앉고 쏟아질 사상누각의 그것인가 봅니다.
그 옛날과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으라면 시골에도 텔레비전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시골 총각한테도 휴대전화가 있다는 것 그런 정도인 것 같았습니다.
'광주에 오면 꼭 연락해라~ 그리고 네 번호 여기다 좀 찍어줘!'